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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시평] KBS 사장의 자질

매일경제 | 입력 2009.11.08 17:29 | 수정 2009.11.09 09:11

 




3년 임기인 새로운 KBS 사장 선출이 코앞에 다가왔다. KBS는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지상파 방송의 맏형이다. 사회적 소통의 중추, 공론장 중 공론장, 전 미디어의 제도적 좌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KBS 사장 선출은 그러기에 항상 초미의 관심거리이자 갈등사안이 된다. 그 자리에 누가 오느냐에 따라 우리 방송, 더 나아가 우리 사회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중차대한 인사의 자질과 관련해 KBS 노조가 앞장서 기준을 밝혔다. 독립성, 공공성, 도덕성, 전문성, 통합성이라는 조건, 그리고 이에 역상응하는 정치권 연루자, 반공영론자, 각종 비리 연루자, 방송ㆍ경영 비전문가, 불통ㆍ갈등 조장자 등 5대 불가 대상자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 기준들이 어째 탐탁지 않다. 1순위 불가 대상인 정치권 연루자는 그렇다 치자. 반공영자는 무어며 각종 비리 연루자, 불통ㆍ갈등 조장자는 또 뭔가? 방송전문가와 경영전문가는 상충할 수도 있다. 기준 자체에 문제가 없다 쳐도 논의 수준, 그 안에 담긴 철학이 영 빈곤하고 모호하다.

우리 사회의 소통, 여론, 미디어에 누구보다 막대한 영향을 미칠 KBS 사장쯤 되는 인사에겐 정치권을 기웃거리거나 각종 비리에 연루된 바 없다는 소극적이고 쩨쩨한 자질을 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공영방송을 떠메고 갈 비전과 능력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그가 풀어야 할 첫 번째 문제는 공영방송 정당성의 위기다. 공영방송은 사회 성원들이 방송의 공적 책무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그 책무를 수행하는 방송사를 신뢰하며, 이에 따른 부담을 기꺼이 수용할 태세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공동체적 의지에 기반한 제도적 실체로 존립할 수 있다. KBS가 이러한 신뢰와 지지를 받지 못함은 2500원 쥐꼬리 수신료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얻기 위한 1차 조건은 국가와 시장권력에서 독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영방송은 국가권력을 견제하되 그 지원을 끌어내고, 시장과 거리를 두면서도 그 안에서 경쟁해야 한다. 이런 모순을 태생적으로 내포하기에 공영방송의 정당성 시비는 불가피한 숙명과도 같다.

둘째는 정체성 위기다. 공영방송은 민영방송과 차별된 양질의 공적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를 실체화하기란 실로 어렵다. 기우였으면 싶지만 최근 우리 공영방송은 논쟁적 내용물, 인사들을 기피하며, 사람들이 한데 모여 퀴즈 풀고, 박수 치고 노래하며, 함께 밥 먹는 장면들로 가득 찬 미시적ㆍ명목적 공익성으로 퇴행하고 있다는 게 필자 느낌이다.

셋째는 경영 효율성 위기다. 다플랫폼과 다채널의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공영방송 역시 제작비의 가파른 상승, 시청률 감소라는 압박을 받으며 쇠락하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공영방송은 높은 임금, 과잉인력 등 공기업적 비효율성이 구석구석 상존한다는 비판에 시원한 답을 못 내놓고 있다.

이런 위기에서 누가 공영방송을 건져낼 수 있겠는가? 정치권에 비연루된 무균청정 도덕군자? 시장과 담을 쌓은 원론적 공영론자? 공익 하면 교육, 건전, 가족을 떠올리는 방송사업 관리전문가? 고작 그 정도여야 하는가?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의 본질을 내다보며 숙명 같은 정당성의 난제를 헤쳐갈 노회한 지혜의 소유자는 어떠한가. 사회 변동의 넓은 지평을 내다보며, 논쟁적 프로그램과 진행자를 하차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적극 포용하는 열린 지성의 소유자는 어떤가. 비정규직을 자르고 제작비를 삭감하기보다는 불요불급한 인력을 과감히 조정하되 제작비는 오히려 늘려가는 원칙의 경영자는 어떠한가. 우뚝 선 고목처럼 그 존재감만으로도 공영방송 기반을 공고화하며 진정한 민주주의와 문화의 도약을 선도하는 그런 인사 말이다.

모름지기 국가 기간 공영방송 수장이라면 이 정도 인물은 꿈꿔봐야 하지 않겠는가.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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