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 알레르기 반응 보이는 서울시

2009. 10. 1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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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쪽방이라고 칭하는 곳에서 이웃과 쌀을 나누고 옷을 나누는 곳. 비록 주머니는 제일 얇은 사람들이지만 이웃과 함께하는 것이 익숙한 동네 동자동. 회색 도시인 서울 하늘 아래 동자동에서 주민 문화 공동체를 꿈꾸는….' 지역시민단체인 '동자동 사랑방'이 지난해 6월 개소식을 하면서 보낸 초대장의 한 구절이다.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용산구 동자동 쪽방 동네는 주민의 80%가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일 만큼, 우리나라의 대표적 슬럼 지역 가운데 하나다. '동자동 사랑방'은 이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주민들의 복지와 권리 보호를 위해 애쓰고 있는 풀뿌리 시민단체다.

동자동 사랑방은 최근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하려고 서울시에 관련 서류를 냈다가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 단체의 설립 목적 가운데 '주민 인권 상담' '주민들과 노숙인의 인권 및 복지 실현' 등의 대목을 문제 삼아 '인권 활동'을 빼지 않으면 서류를 접수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 단체의 엄병천 대표가 "노인과 노숙자의 인권을 말하는 게 잘못이냐"고 항의해도 서울시는 막무가내였다고 한다.

서울시가 이처럼 까탈을 부리는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색안경을 끼고 이 단체를 '좌파 단체'로 보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웃돕기 활동에 머물지 않고 도시 빈민의 권리 문제 등을 거론하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동자동 사랑방이 '용산 참사' 진상규명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은 미운털이 박힌 결정적 계기로 보인다. 동자동은 2007년 동자4구역 재개발사업으로 철거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생생히 경험한 곳이다. 이 단체가 인터넷 카페 안에 '용산 철거민 게시판'을 운영하는 것을 두고 서울시 관계자가 "반정부 활동" 따위의 말을 했다는 것도 서울시의 속내가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서울시의 등록 접수 거부는 명백한 월권행위다.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이나 시행령 어디를 봐도 '인권 활동'을 한다고 등록 접수를 거부하라는 규정은 없다. 비영리단체 등록이 돼도 정부가 곧바로 지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공익 사업 지원금 신청 자격 정도가 주어질 뿐인데, 그걸 갖고 유세를 부리는 태도는 정말 볼썽사납다. 입맛에 맞는 우파 단체들에 대해서는 온갖 편법까지 동원해 특혜를 주고 있는 게 이 정권이다. 서울시는 치졸한 행태를 당장 집어치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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