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야당 만나고도 국정화 비판론 귀 닫은 박 대통령

2015. 10. 2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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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원내대표의 ‘5인 회동’이 어제 열렸다.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청와대에서 만난 것은 지난 3월 이후 7개월 만이다. 회동은 그러나 대통령과 야당 사이의 깊은 골만 확인한 채 마무리됐다. 특히 최대 현안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데 실패했다. 어렵게 성사된 회동이 성과 없이 끝나 실망스럽다.

회동 참석자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두고 30분가량 격론을 벌였다고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국정화를 중단하고 경제와 민생을 돌봐달라”고 촉구했다. 문 대표는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왜 대통령이 국정화에 매달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국민은 국정교과서를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로 생각하고, 획일적인 역사교육에 반대한다”고 지적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국정교과서는 헌법정신을 거스르고 역사윤리를 실추시킨다”며 국정화 철회를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 통합을 위한 올바르고 자랑스러운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며 철회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노력이 정치적 문제로 변질됐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우리는 박 대통령에게 야당이 전하는 국민의 우려를 새겨듣기를 주문한 바 있다. 회동에서 곧바로 국정화를 철회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경청’의 자세를 보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특유의 유체이탈식 화법을 되풀이했다. 교육의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변질시킨 이는 대통령 자신이다. 정착돼 가던 검정교과서 체제를 국정으로 바꾸겠다며 평지풍파를 일으켜놓고는 제3자인 양 안타까워하다니, 참으로 무책임하다. 어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조사결과를 보면, 국정화에 반대하는 의견이 52.7%로 찬성(41.7%)보다 11%포인트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주일 전 조사에 견주면, 거의 모든 계층과 지역에서 반대 의견이 급증했다. 대통령은 이 같은 여론을 듣지도 보지도 않는 것인가.

회동 후 문 대표는 “거대한 절벽을 마주한 것 같은 암담함을 느꼈다. 왜 보자고 했는지 알 수 없는 자리였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하지만 짐작할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야당 입장이나 국민 여론을 들으려 이 자리를 마련한 게 아니었다. 국정화에 대한 자신의 의지가 변함없음을 재천명하려 한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이 독선과 불통으로 일관하는 만큼 민심도 돌아선다는 점이다. 민심은 나 몰라라 한 채 손에 쥔 권력만 믿어선 곤란하다. 국민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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