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역사학자의 책무, 지식인의 역할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발행 방침 확정 이후 각 대학 교수진의 집필 불참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어제까지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서울시립대, 경희대, 부산대, 한국교원대, 이화여대, 단국대, 충북대의 역사학과 및 역사 관련 학과 교수들이 집필 거부 선언을 했다. 국정교과서 집필은 물론 제작과 관련된 연구 개발과 수정, 검토를 비롯한 어떠한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서울대와 서강대 교수들도 집필 거부 성명을 준비 중이다. 집필 거부 움직임은 한국사 관련 학회로도 번져 어제 한국근현대사학회 전·현직 회장단을 비롯한 소속 학자 500여명 전원이 불참 성명을 냈다. 한국역사연구회와 한국고대사학회도 조만간 내부 회의를 열어 불참 의견을 모을 방침이다.
한국사 관련 교수와 학자는 교과서 집필을 위한 필수 인력이다. 이들이 빠진다면 교과서에 필수적인 전문성을 보장받기 어렵다. 그런데 이들 다수가 집필 거부를 천명함에 따라 정부가 장담한 ‘중립적이고 균형 잡힌 집필진 구성’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집필진 구성조차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역사학계의 집단적인 거부는 매우 드문 일이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이, 역사학자의 성명에 나타난 대로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이며 반교육적”일 만큼 중대한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학자와 지식인의 중요한 책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따라서 국정화의 문제를 고발하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학자로서 당연한 일로 볼 수 있다. 국정화는 사회 전반이 인정하는 ‘통설’만 가능한 역사에서 정부가 정하는 단 하나의 역사적 관점만 반영하는 ‘정설’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권은 사회적 반발에 직면하자 갈수록 매카시즘으로 나오고 있다. 특히 어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나온, 이성을 잃은 듯한 발언은 놀랍다. “현 역사교과서는 악마의 발톱을 감추고 있다”(김무성 대표), “대한민국 교실이 (북한)혁명전사양성소인지 말이 되지 않는다”(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 이런 지경이기에 역사학자의 책무, 지식인의 역할을 보여준 최근 역사학계의 움직임은 더욱 평가받을 만하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이번 집필 거부 선언자 중에는 진보는 물론 보수 성향의 교수·학자들도 다수 포함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는 설령 검인정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결코 국정화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해주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시대에 역행하는 국정화를 강행한다면 더 큰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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