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화로 '국론분열' 낳은 장본인은 박 대통령이다

2015. 10. 1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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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은 결코 정쟁이나 이념대립에 의해 국민을 가르고 학생들을 나누어서는 안된다.” 야당 대표가 한 말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언급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치권이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분열을 일으키기보다 올바른 역사교육 정상화를 이뤄 국민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 발언이야말로 그 진수라 할 만하다. 역사교육을 정쟁이나 이념대립의 소재로 만든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박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의식적으로 거리를 둬왔다. 대통령 의지로 추진되고 있음을 온 나라가 아는데도, 새누리당과 교육부 뒤에 숨어 침묵했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박 대통령이 방미를 위한 출국 3시간 전 예정에 없던 수석비서관회의를 소집한 것은 이런 비판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본다. 그러나 박 대통령 발언에선 논리도 소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논점 이탈, 자가당착, 책임전가로 일관했을 뿐이다.

가장 황당한 대목은 국론분열과 국민통합에 대한 언급이다.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분열을 일으킨” 장본인은 박 대통령 자신이다. 지금의 모든 혼란은 박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발행 체제를 뜬금없이 국정으로 바꾸겠다고 나서면서 야기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교육’을 강조했는데,역사해석의 다양성을 배제한 채 권력의 독점적 해석만 가르치는 것은 올바른 역사교육이 아니라 전제적 역사교육이다. 박 대통령은 또 “세계의 지평이 날로 넓어지고, 세계가 하나가 되고 있다”며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박 대통령의 ‘결단’으로 북한·방글라데시 등과 함께 국정제를 전면 채택하는 극소수 국가에 들게 되었다. 국제적 추세와 배치되는 퇴행적 조치를 강행하면서 세계화나 자긍심을 말하는 것은 비논리의 극치다. “(국정화를 하지 않으면)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어떠한 당의(糖衣)로 포장한다 해도 민주주의 퇴행이고 국가적 수치에 불과함을 대통령이 자인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 나라와 국민경제가 어렵다”고 염려했다. 이 말이 진심이라면 당장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부터 철회하기 바란다. 국론을 분열시켜 나라와 국민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주범’이 국정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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