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상식과 정의 외면한 김용판 무죄 선고
진실과 거짓이 있다. 99명이 거짓을 말하고, 1명만 진실을 말한다고 치자. 그러면 진실과 거짓이 뒤바뀌는가. 합리적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아니요'라고 말할 터이다. 단 한 사람의 주장이라 해도 그 내용과 맥락, 정황과 의도를 살펴 진실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법원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무죄 선고는 이 같은 상식을 외면했다.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기를 문란케 한 공직자를 단죄하는 대신 기계적인 법 해석으로 면죄부를 줬다.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어제 서울중앙지법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이 대선 사흘 전인 2012년 12월16일 밤 '후보 지지·비방 댓글은 없었다'는 허위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도록 지시했다는 등의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짜깁기 기소'라며 혐의를 부인해온 김 전 청장의 항변을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외압을 받았다는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은 다른 경찰관들의 진술과 달라서 신빙성이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논리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는 기준이 다수결이란 말인가. 더욱이 권 전 과장은 신상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증언한 내부고발자다. 반면 김 전 청장은 국회 청문회와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조차 거부했고, 권 전 과장을 제외한 경찰관 중에는 김 전 청장의 혐의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이들이 있다. 어느 쪽 진술에 신빙성을 두는 게 타당한가.
재판부는 경찰의 중간 수사결과 내용에 대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는 언급을 했다고 한다. 개인적 소회를 밝힌 모양이나,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할 뿐이다. 김 전 청장에 대한 무죄 선고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기관과 공직자들에게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 당장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누군가가 특정 정치세력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허위 수사결과'를 내놓는다면 어찌할 텐가. 상급심에서는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는 준엄한 판단이 내려져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도 환호작약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김 전 청장에 대한 무죄 선고는 국정원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던 검찰총장과 특별수사팀장을 찍어내고 수사팀을 공중분해시켜 얻은 '비겁한 전리품' 아닌가. 법원 판결은 검찰 수사의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특별검사 도입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 등의 대선개입 실체와 외압·축소·은폐 의혹을 총체적으로 규명하려면 반드시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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