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친박계 충성의 진수 드러낸 홍사덕 '유신' 발언

2012. 8.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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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덕 새누리당 전 의원이 엊그제 일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신은 수출 100억달러를 넘기기 위한 조치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신 정권의 홍보 논리를 연상케 하는 듯한 발언이다. 홍 전 의원은 "유신을 얘기할 때 안 좋은 부분만 얘기하고 좋은 부분은 빼는데 참 비열한 짓"이라며 발언 배경을 설명했다. 그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경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대표적 친박 인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예사로 흘려들을 얘기가 아니다.

그의 '유신' 발언은 보수, 진보의 진영 논리를 떠나 위험천만하기 이를 데 없다. 유신 긍정론자들 사이에서는 경제발전을 위한 1인 독재의 효율적 통치론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도 극소수의 목소리일 뿐이다. 유신은 민주적 제도와 장치들을 송두리째 말살시킨 폭압 그 자체였다. 1972년에서 1979년에 이르는 유신체제가 한국사회에 미친 폐해는 5·16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당시 민주주의를 저당 잡혔던 전 국민이 피해자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한 저명한 보수 논객조차 최근 언론기고를 통해 "체제 지킴이인 중앙정보부장이 체제 총수인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참으로 엉망진창의 결말 하나만 두고 보더라도 유신은 자폭으로 끝난, 따라서 실패한 실험이었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옹색하지만 보수 진영이 박 후보 측에 5·16과 유신에 대한 분리 대응론을 주문하고 나선 것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의 발언은 기존의 박 후보 발언보다도 더 퇴행적이다. 박 후보는 지난 7월 유신에 대한 평가를 요구받자 5·16과 함께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5년 전인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에도 이 같은 입장을 견지하면서 피해자·희생자들에 대해 사죄의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발언은 박 후보의 심경을 넘겨짚은 과잉 충성의 진수를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보스를 위해서라면 한쪽 눈을 질끈 감고,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는 맹목성에 두려움마저 느낀다.

홍 전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한 걸음 물러섰다. 개인적으로 한마디 한 것일 뿐 논전 확대를 원치 않는다는 취지다. 사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정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유신을 둘러싼 논쟁은 소모적 갈등만 부를 뿐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천연덕스럽게 나올 수 있는 여당 내 친박 진영의 분위기다.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선 후보의 위세가 이러할진대 집권한다면 유신이라고 새옷으로 갈아입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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