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이석기 자격심사가 타당한 이유

2012. 7. 5.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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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

국회의원 자격심사를 독일에서는 위임심사(Mandatpr¨ufung)라고 한다. 의원은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주권의 일부를 위임받는다. 그 위임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심사한다고 해서 위임심사다. 자격심사라는 말보다 대의민주주의 이념을 훨씬 잘 담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비례대표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는 이들에게 국민의 위임이 있는지, 그래서 의원 자격이 있는지 심사하는 것이다. 비례대표는 정당이 스스로 결정한다. 그러나 두 의원의 경우 이들을 비례대표로 정했던 바로 그 정당이 위임의 부당성을 문제삼고 있다. 이보다 더 똑떨어지는 자격심사의 대상이 어디 있겠는가.

3권 중 자율성 가장 큰 국회의 책무

헌법의 의원 자격심사 규정은 1948년 제헌 과정에서 제1단계 헌법초안에는 없었으나 유진오 초안에 들어가 제헌헌법으로 확정되고 현행 헌법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진오가 이 규정을 넣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1967년 12월 14일자 동아일보에 당시의 신민당 당수 유진오가 "의원 자격심사는 그 기준을 법률로 제한하고 있지 않으므로 선거부정에 대한 (자격 유무) 판단도 가능하다"고 밝힌 기사가 나온다.

그해 6·8총선은 3선 개헌을 염두에 둔 민주공화당의 무리수로 인해 1960년 3·15 정·부통령 선거 이래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선거 부정이 심했다. 유진오는 국회의 자격심사로 부정 당선 의원을 제명하는 절차를 놓고 공화당 당수 김종필과 대립했다. 유진오의 생각은 분명하다. 박정희 정권 치하의 검찰과 법원을 믿을 수도 없었지만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을 기다리자면 자격 없는 의원들로 국회 임기가 다 지나가버릴 수 있으니 사법 처벌과는 별개로 국회에서 자격심사를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정종섭 서울대 헌법학 교수에 따르면 법원의 재판에 의해서는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지만 국회의 자격심사로는 의원직을 상실할 수 있다. 사법적 확정과 자격심사는 별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 의회가 독립된 심사권을 갖고 있다.

의원 자격심사와 징계는 국회의 자율성을 규정한 헌법 조항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국회는 분립된 삼권(三權)의 상호 견제 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율성이 크다. 대통령과 법관은 흠결이 생길 때 자진사퇴하지 않으면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는다. 그러나 국회는 해산도 탄핵도 당하지 않는다. 그 대신 국회는 스스로 자격심사나 징계를 통해 구성원(의원)의 흠결을 제거해야 한다. 자격심사나 징계에 대해서는 처분을 받은 의원이 법원에 제소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 남용을 막기 위해 제명은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이라는 최고로 강화된 다수결을 택하고 있다. 이것이 의원 자격심사의 헌법적 구조다.

통진당, 당 존립 위한 선택 선행해야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통진당의 최종 제명·출당 여부가 아직 안갯속이다. 통진당 의원총회에서 구당권파(이석기 지지파)와 신당권파 사이에 캐스팅보트를 쥔 김제남 의원의 입장이 분명치 않다. 국회가 두 의원의 자격을 심사하기 위해서는 통진당의 제명·출당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민주통합당은 통진당의 결정이 없으면 자격심사를 할 수 없다는 소극적 자세다. 새누리당 의석수만으로는 자격상실을 이끌어낼 수 없다.

이 의원은 3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반대집회에서 한 농민에게 멱살을 잡혀 쫓겨나는 곤욕을 치렀다.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북으로 가라" "한국 사람이 아니다" "당장 나가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통진당은 민심을 바로 읽어야 한다. 통진당이 경선 부정에 연루된 비례대표 의원과 후보 의원의 제명·출당에 실패한다면 앞으로는 정당의 존립 자체가 논란의 초점이 될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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