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워터게이트와 불법사찰 닮은 점

오병상 2012. 4. 4.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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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수석논설위원 한 달 전 총리실 장진수 주무관이 처음 "불법사찰의 배후가 청와대"라고 폭로했을 당시 미국의 워터게이트를 닮을까 우려했다. 한 달을 지나면서 우려가 점점 현실화되는 느낌이다. 어떤 점에서 워터게이트를 닮았는가, 그 함의는 뭘까.

 첫째, 발단은 사소한 사건이었다. 1972년 6월 워터게이트라는 빌딩에 도둑 5명이 들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처음엔 주목받지 못 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취재 결과 수상한 구석이 드러났다. 도둑들이 모두 외과 수술용 장갑을 끼고 있었다. 도둑들이 가명으로 투숙한 호텔 객실에서 100달러짜리 돈뭉치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포스터외의 다른 언론들은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불법사찰도 처음엔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에 의한 '어설픈 권력남용' 정도인 줄 알았다.

 둘째, 내부고발로 사건의 양상이 달라진다. 흔히 '딥 스로트(Deep Throat)'로 불리는 은밀한 취재원이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33년 만에 밝혀진 취재원은 당시 FBI의 2인자였다. 그의 도움 덕분에 워싱턴 포스트는 도둑들에게 흘러간 돈이 닉슨 대통령의 선거캠프 자금이었음을 특종 보도했다. 백악관이 배후로 밝혀진 것이다. 이후 결정판은 워터게이트 도둑의 양심선언이었다. 도둑 한 명이 마지막 재판을 앞두고 판사에게 "백악관이 은폐했다"는 편지를 보냈고, 판사가 법정에서 읽었다. 장진수 주무관은 청와대가 배후이며 은폐를 지시했다는 사실을 한꺼번에 폭로했다.

 셋째, 사건 발생 직후 백악관의 수사방해다. 닉슨 대통령은 사건 발생 6일 후 비서실장과 은폐를 논의했다. CIA를 동원해 FBI의 수사를 중단시키자는 아이디어에 대해 "좋은 생각"이라며 "(FBI를) 거칠게 다뤄라"고 지시했다. FBI가 도둑들의 자금을 계속 추적하자 "국가기밀과 관련된 사안이니까 CIA가 맡겠다"는 논리를 내세워 수사권을 뺏는다. FBI의 2인자가 언론사에 제보를 한 것은 백악관의 외압에 대한 반발인 셈이다. 물론 딥 스로트는 이런 제보를 통해 FBI 국장이 경질될 경우 자신이 국장 자리에 오를 것이란 기대도 했다. 장진수에 따르면 청와대는 증거물 파괴를 지시했으며, 검찰의 수사를 방해했다.

 넷째, 정체불명의 돈이 등장한다. 워터게이트 도둑은 비밀계좌를 통해 닉슨 선거캠프의 돈을 받았다. 도둑들이 체포되자 가장 먼저 보석금을 들고 달려간 사람은 백악관 직원이었다. 당시 달려갔던 백악관 직원은 나중에 백악관을 상대로 "비밀을 지켜줄 테니 거액을 보상하라"고 거꾸로 협박한다. 장진수의 경우도 각종 명목으로 1억1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돈을 준 사람은 여러 청와대 관계자들이며, 돈의 명분도 여러 가지다. 돈의 출처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섯째,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으며 사건을 더 키운다. 거짓말 시리즈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하이라이트며, 닉슨의 도덕불감증을 보여주는 키 포인트다. 사건 직후 백악관 대변인은 "3류 절도 미수 사건"이라며 자신들과 무관함을 강조했다. 닉슨은 기자회견에서 "진상을 조사한 결과 백악관 관련자는 아무도 없음을 확신한다"고 단언했다. 조금씩 진상이 드러나면서 '거짓말'이란 비난이 쇄도하자 닉슨은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고 항변한다.

 거짓말의 백미는 사건의 막바지 테이프 제출 장면이다. 닉슨의 참모는 의회 증언에서 "백악관에 자동 녹음장치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당장 테이프를 제출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백악관은 테이프 대신 녹취록을 제출하겠다고 버틴다. 특검이 거부하자 닉슨은 짜깁기한 테이프를 제출한다. 짜깁기 사실이 알려지자 상원 특별위원회는 원본 제출을 요구한다. 닉슨은 '국가기밀 관련'이라며 제출을 거부한다. 결국 대법원까지 간다. 닉슨이 졌다.

 그런데 닉슨은 원본을 제출하면서 또다시 꼼수를 피웠다. 18분30초 분량을 삭제하고 내놓는다. 여비서가 실수로 지웠다고 핑계 댔다. 언론의 취재 결과 녹음 내용을 지울 수 없는 상황임이 드러났다. 결국 닉슨은 진짜 원본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원본에서 결정적 증거(Smoking Gun)가 드러났다. 닉슨이 사건 초기부터 은폐를 지시한 생생한 대화록이다. 닉슨을 감싸던 변호사마저 "속았다"며 떠난다. 하원이 탄핵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닉슨의 사임은 거짓말 때문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불법사찰과 관련해 청와대도 초기엔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워터게이트는 2년2개월을 끌었다. 그리고 이후 20년 동안 공화당은 상·하원 양원 모두에서 소수파로 수모를 겪어야 했다.

오병상 기자 obsang@joongang.co.kr

▶오병상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ob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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