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MB정권의 서프라이즈

박래용 디지털뉴스 편집장 2011. 11. 2.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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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영국의 국왕 윌리엄 3세는 모든 국민에게 집 창문 개수에 따라 세금을 내도록 했다. '창문세(窓門稅·window tax)'는 텅 빈 국고를 채우기 위한 꼼수였다. 창문 6개 이하는 면제, 7~9개는 2실링, 10~19개는 4실링, 20개 이상은 8실링을 부과했는데 거의 모든 집이 납세 대상이었다. 시민과 의회는 거세게 반발했지만 국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시민들은 6개의 창문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흙을 바르거나 판자로 가리고 벽돌을 쌓아 막아버렸다. 사태는 갈수록 악화됐다. 고집불통 윌리엄 3세는 일부러 창문을 없앤 집에 벌금 20실링씩을 물리라고 명을 내렸다. 사람들은 아예 창문이 없는 집을 짓기 시작했다.

엊그제 TV 프로그램 < 서프라이즈 > 에서 본 에피소드다. 가뜩이나 햇빛도 잘 안나는 영국에서 시민들은 통풍까지 안되는 집에 살며 정신적 우울감을 호소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우울하고 힘들기는 우리도 매한가지다. < 서프라이즈 > 제작진은 이런 것을 찾으러 멀리서 헤맬 것 없다. 지금 우리 현실이 딱 생생 서프라이즈다.

10·26 서울시장 선거는 민심과 동떨어진 집권세력에 대한 엄혹한 심판이었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고 국정쇄신을 다짐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선거 다음날 이명박 대통령이 맨먼저 한 일은 2008년 광화문 사거리에 '명박산성'을 쌓아 불통의 상징 인물로 꼽히는 전 경찰청장을 경호처장으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민심 이반에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대통령실장은 주저앉히고, '4대강 전도사'로 알려진 교수를 국립환경과학원장에 임명했다. 성난 민심을 달래기는커녕 모욕을 준 것이다. 집안의 소나 말이 울어댄대도 뭔일인가 싶어 요리조리 살펴볼 것이지만, 이 정권엔 시민들의 아우성이 우의(牛意) 마의(馬意)만도 못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이런 게 바로 서프라이즈감이다.

대통령이 길을 잡아주니 종아리를 걷어야 할 가신들은 얼굴이 환해졌다. 집권당 대표가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니다"라고 말장난을 한 것도 그 동네 정서를 반영한 얘기일 것이다. 20대 69%, 30대 75%, 40대 66%가 등을 돌리고 서울시 선거구 48개 중 41곳에서 참패했음에도 1주일이 지나도록 반성하는 사람도, 책임지는 사람도, 쇄신을 다짐하는 사람도 없다. 고작 내놓은 대책이란 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명망가를 영입하겠다"는 것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수평적 관계에서 하루 수백만명이 자율적으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SNS 세계를 기술자 한두 명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얘기다. 소셜네트워크를 드라이버와 펜치로 구부렸다 펼 수 있는 구리선 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또 하나의 서프라이즈다.

2007년 국민이 BBK, 위장전입, 도곡동 땅 등 온갖 의혹의 먼지 구덩이 속에서도 이 대통령을 뽑아준 것은 도덕성보다는 경제 살리기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출범한 이 정권 4년 동안 대통령이 특별관리한다는 52개 생필품의 소위 'MB 물가지수'는 22.6% 치솟았고, 가계소득은 거꾸로 15% 감소했다. 나랏빚은 92조원이 늘어나 이 정권이 끝나더라도 4인 가족 한 가구당 760만원의 세금을 더 내 갚아야 한다. '747'(연 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경제규모 7위)이란 '뻥 공약'은 경제성장률 3.1%, 국민소득 2만579달러, 경제규모 세계 15위로 정확히 반토막 난 성적표가 나왔다.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손가락질했던 참여정부 5년 평균 성장률 4.3%에도 못미치는 점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내 임기 중에 경제위기가 온 것이 다행"이라며 여전히 경제 전문가연(然)하고 있다. 트위터 세상에선 이런 정신나간 말들만 모아 '유체(幽體)이탈 화법'이라며 놀리고 있다. "MB정부에서 오르지 않은 두 가지는 남편 월급과 아이 성적뿐"이란 냉소도 유행한다. 밑바닥은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TV 뉴스는 이런 얘기를 전하지 않는다. 1%의 탐욕에 분노하는 '점령하라' 시위가 세계 82개국 1500여개 도시에서 한날한시에 열렸지만, 친여 보수언론은 서울 여의도 시위를 좌파의 시비로 닦아세웠다. 대한민국 99%의 집에서 한숨과 비명이 터져나왔던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선거가 끝난 뒤에야 보수언론들이 그동안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았던 20~40대가 마치 어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양 분석이니 뭐니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 이런 소극(笑劇)이 없다.

검찰은 한명숙 무죄에 고개를 쳐박기는커녕 거꾸로 "법원이 표적판결했다"고 삿대질하는 마당이다. 이 정부 들어 정연주 전 KBS 사장, 미네르바 등 정권의 비위에 맞춰 기소했다 무죄가 난 사건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검찰이 반성하거나 책임졌다는 얘기는 없다. PD수첩 사건은 무죄를 받고, 오히려 MBC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사과했다. 서프라이즈, 서프라이즈, 서프라이즈. 정말이지 '세상에 이런 일이…'라 할 만한 깜짝 놀랄 얘깃거리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나 많다. 17세기 영국 국민은 창문에 흙칠이라도 했지만 우린 뭘 할 수 있는가. 그나마 내년에 총선·대선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 박래용 디지털뉴스 편집장 leo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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