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386세대 기부는 생활의 일부.. '자본주의 4.0'의 희망을 보다

김지섭 사회부 기자 2011. 10. 15.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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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강업 이상춘(42)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중소기업에 들어가 4년간 일하고 사표를 냈다. 하고 싶은 사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운도 따랐다. 사업 시작 3년 만에 애초 목표했던 돈을 다 모았다. 회사 다니던 시절 형성해 놓은 인맥 덕을 톡톡히 봤다.

이 대표는 "목표했던 돈 이상은 내 분수에 맞지도 않고 회사가 이만큼 되게 도와준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게 맞다"고 했다. 그는 2010년 1억원을 내고 서른두 번째 아너소사이어티(고액 기부자들의 모임) 회원이 됐다. "내가 앞으로 제대로만 이 사업을 끌고 가면 충분히 일정 수준 이상으로 살아갈 수 있는데 아등바등 살면서 그 시기를 앞당길 필요가 있나요."

충북 청주시 에 사는 이재준(43) 에이라인치과 원장도 1억원 기부를 약정했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결심한 것이다. 한꺼번에 1억원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해마다 2000만원씩 5년간 기부하기로 했다. 이 원장은 일부러 시간 내서 해외로 의료봉사까지 다니는 사람들에 비하면 자신은 그저 편하게 돈으로 '때우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환자들을 생각하며 기부를 하게 됐다고 했다. "요즘 아무리 어렵다, 어렵다 해도 의사는 다른 월급쟁이보다 많이 버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다 우리 병원 와주는 주민들 덕분입니다."

울산 에 사는 윤영선(42) 아이윤안과 원장은 1억원 기부 외에도 해외의료활동을 떠나는 등 여러 복지단체의 봉사를 하고 있다.

그의 병원에는 기부나 봉사를 주관하는 부서가 따로 마련돼 있다. 그는 "(이런 봉사를 하면) 당장 내가 힘이 난다"고 했다.

본지의 특별 기획인 '자본주의 4.0―나누는 사람들' 취재 과정에서 느낀 것이 있다. '신세대 기부자'들이었다. 대개 386 연령층이었다. 이들은 넉넉지 않게 자랐지만 그렇다고 앞 세대처럼 배를 곯고 자라진 않았다. 최루탄 자욱한 캠퍼스에서 20대를 보내면서도 '공부 잘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대학을 마친 후에는 한국의 고속 성장 단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구(舊)세대 기부자 중에는 "가난했던 한(恨) 때문에 기부한다"는 사람이 많았다. 메모지 값 아끼려고 광고지를 잘라 쓰는 80대 노인도 있고, "못사는 사람 얘기 들으면 남의 일 같지 않아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는 60~70대 기업인도 있었다.

하지만 386세대의 기부 스타일은 달랐다. 척박한 땅에서 맨발로 일어서 거액을 쾌척하는 휴먼 드라마 감동은 덜했지만 바쁘게 살면서도 자기 능력에 맞춰 긴 시간 차근차근 기부하는 이들이 많았다. 액수가 많든 적든 기부를 평소 생활의 일부로 삼고 있었다. 사회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남다른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를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기부는 보통사람도 충분히 생활의 일부로 할 수 있는 합리적 의사결정의 결과물이었다.

그들을 취재하면서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기부 선진국 미국 처럼 개인의 생활, 가족문화로 기부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확신이 섰다. 자산가이든 샐러리맨이든 함께 나누며 돕고 사는 '자본주의 4.0' 시대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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