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새로운 핑계 '100년 만의 폭우'

2011. 7. 2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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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낮게 깔린 두껍고 어두운 구름들은 아파트 옥상에 닿을 듯 다가와 밤새 내린 비보다 더 많은 물을 쏟아냈다. 천둥과 벼락이 계속 떨어져 귀가 먹먹했다. 출근길은 지옥이었다. 서울 강남대로 진입로엔 오가지 못하는 차량이 약 1㎞가량 꼬리를 물고 있었다. 이미 강남역 일대가 침수됐다고 알려주는 경찰이나 구청 직원은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다 버스나 택시를 포기하고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멈췄다. 인근 지하철역(교대역)으로 가는 길에서 누런 흙빛 '수평선'을 만났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차들이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을 도로에 수평선이라니!

지난 27일 서울 강남에 퍼부은 비는 이례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간신히 사무실에 도착한 기자는 곧 '100년 빈도의 폭우'라는 보도자료를 접했다. 퇴근길에 만난 주민들은 양동이를 들고 물 구하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도 "한 세기에 한 번 찾아올 법한 비라니까 별 수 있나"라며 푸념했다.

우리가 겪은 이번 물난리는 진정 천재지변일까. 기록을 살펴보면 7월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 연속 내린 비의 양(587.5㎜)으로는 역대 최고치다. 그러나 우면산 흙이 쓸려 내려오고 광화문ㆍ강남역 일대가 물에 잠긴 27일만 두고 본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날 서울에 퍼부은 301.5㎜의 비는 1920년 8월2일(354.7㎜)과 1998년 8월8일(332.8㎜)에 이은 세 번째 강수량이었다.

기록적인 폭우는 맞다. 하지만 많은 보도에서 접하듯 '100년 만의 폭우'로 보기는 힘들다. 기상청은 이번 폭우에 대해 서울시가 습관적으로 사용한 '100년 만의'라는 수식어구를 붙일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매년 '집중호우'가 내리는 날은 늘어만 간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나면 이례적인 사건이었다고 치부하는 서울시와 행정당국의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방재 책임자인 그들이 비난을 피하기 위해 핑계 뒤로 숨는다면 내년 여름에도 '100년 만의 폭우'는 신문지면을 장식하게 될 것이다.

사회부=이수민기자 noenem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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