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한진중공업 사태는 예견되었다

2011. 7. 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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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종국 전국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6개월 동안 진행되고 있는 한진중공업 파업 사태를 지켜보자니, 3년 전 필리핀 수비크만의 한진중공업 조선소에 갔던 일이 떠오른다. 어쩌면 이미 예견된 사태였는지 모른다.

나는 2008년 8월1일부터 9일까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국제건설목공노련(BWI) 주최 국제청년조직활동가교육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일정에는 특정 지역을 방문하여 '세계화가 산업 현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직접 경험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마닐라에서 3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한때 미국 해군기지로 사용되기도 한 올롱가포 수비크만에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70만평의 초대형 조선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필리핀 정부는 한진중공업 필리핀 현지법인에 이 시설에 대한 15년 동안의 사용권을 부여했다. 이미 1단계 공사가 마무리돼 아로요 당시 대통령까지 선박명명식에 참석한 가운데 1호 선박을 진수한 상태였다. 하지만 대한민국 기업이라는 자랑스러움은 잠시, 한국 특유의 천민자본주의 행태들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뒤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현지 숙소에 있는 수비크조선소 노동자들을 찾아가 "한국말 할 줄 아느냐?"고 했더니 이구동성으로 "Pali Pali Sekya!"(빨리 빨리 새끼야)라며 한국 관리자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을 그대로 전하면서 "이 말이 무슨 뜻인가요?"라고 물었다. 이 말 한마디가 수비크조선소의 노동환경 실태를 그대로 짐작케 했다. 당시에도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현지법인 현장에는 '해고자 노동 탄압' '계속되는 산재 죽음' '조선소 주거 주민 강제철거' '다단계 하청 노동착취' 등 산적한 문제들이 반한 감정을 자극하고 있었다.

2006년 5월에 공사를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수비크조선소는 '투자장려법'에 따라 8년 동안 각종 세금이 면제된다. 당시에 조선소 현지 노동자들의 한달 임금이 한화로 18만원 정도였다. 회사에는 당연히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한국의 노동조합을 무력화할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수비크에 도착하여 첫째로 한 일은 현지 조선소의 해고 노동자들과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해 7월 수비크조선소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결혼을 앞둔 젊은 아들을 잃은 70살 노부부는 자식 잃은 슬픔을 쓸어내리며 "나는 20년 동안 필리핀 공사 현장에서 일했어도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았는데, 내 아들은 조선소에 일하러 나간 지 한달 만에 차디찬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며 울분을 토했다. 물론 한진의 금전적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다단계 하청업체의 몫이다.

우리가 수비크조선소를 방문했을 때 3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필리핀건설연맹(NUBCW)은 이미 그해 3월과 6월 두차례 걸쳐 성명을 내고 산재 사망 사고에 우려를 표했으며, 직업건강안전기준(OHS) 위반 여부를 조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를 요구하고 있었다.

또 필리핀 노동법에 따르면 채용 뒤 6개월이 지나면 정규직 전환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소속 하청업체가 자주 바뀌었다. 우리가 현지를 방문했을 때도 한진의 푸른색 유니폼 근무복은 모두 똑같은데 왼쪽 가슴의 회사 이름은 각기 모두 달랐다. 노동자들 자신도 모르게 소속이 수시로 바뀐다고 한다. 당시 한진 현지법인의 사쪽은 "노조가 조직화 사업을 중단하지 않으면 400명을 해고하겠다"고 통보한 상태였다. 이를 위해 계속 일하고 싶으면 '충성 맹세' 서류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고, 해고자 및 활동가들의 사진을 현장 정문 앞에 부착하고 범죄자처럼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당연히 반한 감정이 극에 달할 수밖에….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법인에서 벌이고 있는 행태를 보면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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