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연기금의결권 발상 접으라

기자 2011. 5. 3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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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현 / 연세대 상경대 교수 경제학

최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 연기금(年基金)이 보유한 주식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연기금 주권 행사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연기금의 자산 규모는 국민연금만 해도 330조원이 넘는데, 이는 일본·노르웨이·네덜란드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큰 규모다. 주식 보유액도 약 55조원에 이른다.

곽 위원장은 이러한 국민연금의 주권 행사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언뜻 보면 주주가 의결권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 역시 당연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연기금의 조성 목적 및 당면 현안 등을 살펴보면, 정부가 주체가 된 연기금 주주권 행사를 '당연시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다.

우선, 연기금의 실제적인 주인은 정부가 아닌 국민이다. 정부는 연기금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국민의 복지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국민을 대신해 운용을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며, 결코 연기금의 주인이라 할 수 없다. 정부는 주주권 행사를 통해 '대기업에 대한 견제'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 목표가 연기금의 수익률을 제고하거나 안정적인 운용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더욱이 연금의 실제적 주인인 국민의 여론 수렴과 공감대 형성에 힘쓰는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연기금 주주권 행사와 관련해 일부 정치권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오너가 있는 기업이 아니라 포스코, KT 등 민영화된 대기업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런데 회장 및 임원진 선정에 있어 외압 또는 낙하산 인사가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는 기업들이 대상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숨은 의도가 기업에 대한 통제 강화에 있는 것은 아닌지 의혹을 지우기 어렵다.

더욱이 정부의 주주권 행사는 또 다른 형태의 관치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정부 정책에 비협조적인 기업에 정부가 경영 지배구조 개선을 들먹이며 연기금 주주권 행사를 이용해 일종의 '군기잡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이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되면 기업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저해되고 경영 효율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결국 이 같은 기업통제 강화가 기업의 원활한 의사결정 저해 및 이에 따른 기업 가치 하락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고 말 것이다.

현재 연기금은 내부적으로 지배구조 개선, 미래 연기금 고갈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아직도 연기금을 통해 노후보장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지 불안하게 느끼는 국민이 많다. 그 때문에 개인연금 등 사보험에 추가적으로 가입하는 경우도 흔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기금 관리자인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의결권 행사를 통한 '대기업 견제' 기능 강화보다는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원천적인 불안 해소라 할 것이다. 앞으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연금이 고갈될 위험이 크다고 여러 전문가가 경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금 운용마저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많은 국민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적절한 여론수렴 및 공감대 형성 절차도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의 저축으로 모은 연기금에 대해 정부가 독단적으로 주주권 행사를 강행하려는 태도는 많은 국민의 커다란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 단계에서 연기금 주주권 행사를 제기하기보다는 국민연금 자체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국민이 연금 고갈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시급한 과제임을 주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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