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조용래] 빈곤대국 美·日을 따라갈 것인가

입력 2009. 7. 22. 17:58 수정 2009. 7. 2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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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부를 들먹거리지만 이미 한국의 정부지출비율은 OECD국가 중 가장 낮다"

경제규모가 세계 최고인 나라는? 가난한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는? 둘 다 미국이다. 전후 세계 정치·경제를 주물러온 미국의 앞모습은 당연히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다. 미국발 세계금융·경제위기로 체면이 많이 구겨졌지만 지난해 미국의 GDP 규모는 14조2000억달러로 2위 일본을 9조달러 이상 따돌렸다. 9291억달러 한국의 15.3배다.

하지만 미국의 뒷모습은 참담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5년 미국의 빈곤율은 17.1%로 세계 최고다. 빈곤율이란 소득 순으로 국민을 줄 세워 한 가운데 선 사람이 얻은 소득의 반 이하도 못 버는 사람들의 비율이다. 미국의 이런 두 얼굴은 20여년 전부터 고착돼 왔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미국의 빈부 격차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부 등장과 함께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The Conscience of a Liberal' 2007). 작은 정부론에 기반을 둔 복지재정 삭감, 감세 정책은 이후 시장만능주의와 자기책임 원칙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로 이어지면서 격차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그 배경으로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를 꼽는다. 작은 정부, 복지 축소 등의 정책은 뒤집어 보면 돈 많은 백인들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복지 재정은 주로 저소득층 흑인들을 비롯, 히스패닉 아시안 등 신규 이주자들을 위해 쓰이기 때문이다. 감세 역시 부자 백인을 위한 것이었다.

크루그먼의 이 책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주목을 받기 이전에 출간됐지만 마치 미래를 짚어낸 듯한 느낌을 준다. 양극화와 빈곤층이 미국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 문제의 본질인 인종차별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킨 배경인 것으로 읽힌다.

다음으로 제2 경제대국 일본은 어떤가. 기묘하게도 일본의 빈곤율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1990년대 장기불황 중의 일본을 덮쳤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2001∼2006) 일본의 미국 따라하기는 피크에 이르렀다. 복지 축소, 민영화, 시장주의, 자기책임 원칙이 유난히 강조됐다.

그 와중에 일본의 비정규직 근로자는 배로 늘어 전체 근로자의 35%를 차지하게 됐고 빈곤율도 12%에서 14.9%로 급등했다. 전후 일본을 리드해 왔던 집권 자민당은 8월 중의원선거를 앞두고 패색이 짙어 보인다. 작은 정부론에 근거한 복지 축소에 대한 국민의 반감,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은? 빈곤율은 14.6%로 일본을 바짝 뒤쫓고 있다. 유럽 주요국의 빈곤율이 10% 이하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은 미국, 일본에 가깝다. 현 정부가 요근래 서민 경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진의는 아직 모르겠다. 자기책임 원칙, 시장 원리, 작은 정부와 민영화가 한 패키지로 거론되는 상황이 아닌가.

작은 정부를 들먹거리지만 OECD 회원국 중 한국만큼 정부지출이 적은 나라는 없다. 2008년 GDP 중 정부지출 비중은 한국 28.9%, 미국 36.7%, 일본 38.4%, OECD 평균은 40.8%였다. 정부 지출이 적다는 것은 작은 정부로, 예컨대 복지 부담의 상당부분을 개인 책임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세금, 사회보장비 등을 포함한 국민부담률도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 2006년 국민부담률은 한국 26.8%, 일본 27.9%, 미국 28%, OECD 평균 35.9%였다. 빈곤대국 미국, 일본을 추종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대로 갈 건가. 미·일은 이미 방향을 바꿔잡기 시작했는데.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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