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자들을 위한 세금잔치 / 최영태

2008. 9. 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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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시론

떠들썩한 2008년도 세제개편안의 핵심은 대규모 감세를 해주고 이를 통해 경제성장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주요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법인세율 5% 인하, 소득세율 2% 인하, 상속·증여세율 대폭 인하, 양도소득세율 3% 인하, 최고가 주택에 대해서도 1가구 1주택자일 경우 양도세 대부분 비과세, 그리고 종합부동산세 동결 등이다. 감면 규모도 천문학적인 금액인 24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법인세의 경우 2004년도 신고내용을 기준으로 과세표준(이익이 그 정도 난다고 봐도 큰 차이가 없다) 50억원 이상을 신고하는 법인의 수는 불과 0.6%밖에 되지 않지만 그들이 내는 법인세가 전체의 77.6%를 차지한다. 법인세율을 인하하면 0.6%의 소수 기업에 혜택이 집중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종합소득세의 경우 3.9%의 고소득 자영업자들에게, 근로소득세는 3.97%의 고액 연봉자에게 감세혜택이 집중된다. 부자들을 위한 세금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면 부자들이 투자를 많이 하고 씀씀이가 늘어나 경제가 살아나서 결국에는 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서민에 대한 어설픈 배려를 늘어놓는다. 기업들이 돈을 쌓아두고도 투자에 나서지 않는 점 등이 이미 지적되고 있으므로 레이거노믹스적 이론의 한계를 재론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대표적인 불로소득인 부동산 양도차익을 사유화하고 부의 대물림을 보장하는 것까지도 경제 활력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덩어리 편협한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최고가 주택을 팔 경우에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게 되었으며, 두 채가 넘는 자라도 팔지 않고 자녀에게 증여를 하면 많은 세금을 절약할 수 있게 배려하였다.

조세 부담률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마저 왜곡해 아예 미국과 일본보다 조세 부담률이 높다고 주장하는 것은 양심을 거스르는 주장이다. 조세 부담률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는 낮은 반면, 미국과 일본보다는 높다. 그러나 사회보장세를 포함한 국민 부담률을 비교할 경우 우리가 미국과 일본보다 낮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국민 부담률은 슬그머니 빼고 조세 부담률만 비교하는가?

감세정책의 가장 두려운 점은 대규모 재정적자가 발생해 정부의 기능이 거의 마비되는 것이다. 정부조차도 잠재적 조세 부담률(재정적자까지 포함했을 때의 조세 부담률)을 새로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재정적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정부 지출을 축소해 작은 정부로 가는 것은 감세론자의 지론이기는 하나 워낙 인기가 없다 보니 작은 정부로 간 사례는 별로 없다. 지출 축소 계획을 감세안과 더불어 밝히기 어려워하는 정부의 태도로 보아 대규모 재정적자의 가능성을 높게 보아도 지나친 것은 아닐 것 같다.

감세정책이 가진 여러 한계들 때문에 감세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단순한 선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국민들이 다른 대안들과 비교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학등록금 후불제' 정책과 감세정책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의지와 재능이 있으면 부모의 능력에 관계없이 대학을 다닐 수 있게 하고 나중에 그들이 성공하면 세금을 좀더 부담해 갚게 하는 방식이다. 자유주의자 경제학자 프리드먼도 찬성했다고 하니 그 이론적 배경이나 효과는 보수주의자들에게도 긍정적일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학과 대학교의 연간 등록금이 연 12조원 정도이니 지금의 감세안으로 충분히 도입 가능한 제도다. 감세정책은 등록금 후불제와 정책 경쟁을 벌여야 하지 않나.

지난 1일 대규모 감세정책이 발표되는 날 아이러니하게도 환율과 이자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금융불안이 시작됐다. 시장은 냉정하게 반응했다.

최영태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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