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국 소방관/강원도 춘천소방서 현장지휘대]
소방차를 타고 출동하는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꽉 막힌 길에서 날아갈 수 있는 소방차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날아가지는 못하더라도 비좁은 골목길에서는 제자리 회전을 하며 방향을 돌리거나 빠져나갈 수 있는 소방차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해 보기도 한다. 답답한 마음에 이런 상상을 해보지만 언젠가 먼 미래에나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푸념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스위스에 이렇게 비좁은 길로 소방차를 달리는 소방관들의 답답함을 달래 줄 소방차가 등장하였다. 바로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을 할 수 있는 소방차이다. 스위스
렌츠부르크 (Lenzburg)소방대 홈페이지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이 소방차는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차체 바닥 중앙에 있는 특수장치를 통해 차량을 땅위에서 띄워 제자리 회전을 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차량을 회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차체 바닥에 있는 원형 디딤원판이 금속 유압봉에 연결되어 내려오다가 땅을 밀어 차를 부상시킨다. 차체 바닥에 내장된 부위의 기어물림을 통해 느린 속도로 제자리 회전을 한 뒤, 원하는 위치를 잡으면 디딤판을 다시 차체바닥으로 끌어올리게 된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대단히 요긴하고 놀라운 기능을 가진 소방차라는 느낌을 갖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유럽의 세계적인 소방차 제조업체에게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은 이러한 기능을 가진 차량이 유럽의 다른 국가는 물론 스위스 국내에서조차 거의 찾아보기 힘든 사실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그 해답은 이 소방차가 배치된 곳과 사용되는 용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이 소방차는 지역 소방안전을 담당하는 소방대에 배치된 것이 아니라, 도로와 터널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에 배치가 되어 있다. 터널 사고시 사고현장에 들어가서 구조 및 화재진압 작업 후 다시 차를 돌려 나오기 쉽게 한 것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을 관통하는
몽블랑 터널내에 있는 소방대의 소방차가 운전석이 앞뒤로 두 개가 있는 이유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소방차의 제자리 회전장치는 스위스에서도 터널사고 대응의 특수목적을 위해 극히 일부에서 제작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진에 나오는 소방차의 제자리 회전기능은 특수장치부착으로 차량의 중량과 제조비용을 증가시키게 되고, 일반적인 전후진방식의 방향전환에 비하여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도 하며, 도로의 경사 및 지반상태에 따라 사용범위가 제한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소방차가 통행하는 도로의 공간을 충분하게 확보하는 것이 제자리 회전을 하는 장치를 부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신속한 차량이동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굳이 유럽 소방에서는 이러한 특수기능 소방차를 보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면, 주차된 차량들 사이로 간신히 차 하나가 빠져나갈 수 있는 골목길이나 아파트내 주행로에서 진입 후 좌우회전이 어렵거나 차를 돌려 나오기가 곤란한 어려움을 많이 겪어야 하는 현실에 놓인 우리의 소방관들에게, 이러한 제자리회전 기능이 있는 소방차는 한 번 쯤 가져봤으면 좋겠다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진 외국처럼 소방차가 여유있고 빠르게 사고현장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도로 여건의 개선이 쉽지 않아 이러한 별난 소방차를 선망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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