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전경련의 원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권경(權經) 결탁의 산물로 태어났다. 1961년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는 부정축재 혐의로 기업인 15명을 구속했다. 기업인을 부패집단으로 여겼던 청년 장교들이 “본때를 보여야 한다”며 재계 전반에 대해 날을 세우고 있던 때였다. 재계 대표 인물 중 한 사람이었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머물던 일본에서 급거 귀국,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반도호텔에서 만나 “국가 기간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며 선처를 요청했다. 풀려난 이들은 그해 8월 이 창업주를 초대 회장에 선임하며 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를 만드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군사정권 시절 내내 정부와 전경련은 무척 가까웠다. 수출 대기업을 육성하는 정부와 산업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한때 전경련은 정치자금을 모으고 전달하는 통로였을 만큼 권력 핵심과 맞닿았다.
그러나 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애증이 되풀이됐다.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각을 세웠고, 보수 정권 하에서는 밀월이었다. 노무현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1월 전경련 한 고위 임원은 공개적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목표는 사회주의”라고 말해 큰 파장을 낳았다. 전경련 회장 사돈인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정부와의 호시절은 절정에 달했다.
과유불급일까, 아니면 자업자득인가. 전경련의 지나친 정치색이 급기야 어버이연합 자금 지원 논란을 촉발한 것 같다. ‘개혁론’을 넘어 ‘해체론’까지 빗발치는 등 전경련은 창립 이래 최대 위기다. 과거에도 시민사회단체, 야권의 공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엔 결이 다르다. 검찰 수사 의뢰에 이어 당장 국정조사가 가시화되고 있다. 여소야대 지형의 압박은 전경련의 존립마저 흔들고 있다. 재계의 본산, 경제단체의 맏형 노릇을 하던 전경련의 원죄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이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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