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발] 누리과정 떠넘기기, 경지에 이른 뻔뻔함 / 정남구

2016. 1. 1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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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충분히 반복하면 사각형이 사실은 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결국 사각형과 원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들은 단지 단어에 지나지 않으며, 단어라는 것은 위장된 아이디어가 가려질 때까지 계속 찍어낼 수 있는 것이다.”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싸고 요즘 정부와 새누리당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히틀러 정권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가 했다는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돈다. 거짓이 진실을 비웃고 짓밟는 일이 세상사에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다. 왜곡한 사실을 단순한 문구로 반복해서 귀에 심으면, 대중은 그것을 점차 진실로 받아들이기 쉽다. 뻔뻔함이 경지에 이르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제18대 대통령 선거 새누리당 정책공약 자료집을 펼쳐놓고 있다. 398쪽에 이르는 책자엔 ‘세상을 바꾸는 약속, 책임 있는 변화’란 제목이 달려 있다. 그다음 쪽에 국민행복 10대 공약이 적혀 있다. ‘약속 2’를 보면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이란 큰 글자 아래 “만 5세까지 국가 무상보육 및 무상 유아교육”이라고 쓰여 있다. 만 3~5살 무상보육인 누리과정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약속이다.

그렇다면 예산이 어디서 나와야 할까?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은 “누리과정 예산은 국민 세금으로 거둬들인 내국세의 일부를 지방재정교부금으로 교육청으로 넘겨 예산을 집행하도록 법제화했다”고 말했다. “국가재정이 주머니만 바꿔 차는 형태로 결국 국고에서 지원되는 것”이라고 한다. 억지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의 20.78%를 떼어 지방교육청에 주도록 이미 제도화돼 있던 것이다. 김 의장처럼 말하려면, 애초 “교육청의 다른 사업 예산을 줄여서 누리과정 예산으로 쓰게 하겠다”고 했어야 한다.

지방교육청에 돈이 남아도는가? 정부는 출범 초 ‘세수가 크게 늘어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실은 딴판이었다. 2014년에는 실제 교부액이 추계액보다 4조8천억원 적었고, 2015년에는 10조원이나 적었다. 그럼에도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교육청에 떠넘기면서 2012년부터 4년간 전국 교육청이 지방채를 발행해 끌어다 쓴 빚이 14조원을 넘는다. 올해 교부금은 지난해보다 1조8천억원 늘었는데, 그래 봐야 총액이 2013년 수준이다.

올해 전국 누리과정 운영에 들어가는 돈은 4조원가량이고, 이 가운데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2조원이 쟁점이다. 해법은 아주 간단하다. 중앙정부의 지방재정교부금 법정 교부율을 누리과정 예산을 감당할 수 있게 조금 올리면 된다.

2조원은 따로 떼어놓고 보면 엄청난 액수다. 하지만 나라살림을 운영하는 박근혜 정부한테는 껌값이라 할 만한 돈이다. 노무현 정부 5년간 10조8천억원이던 재정적자가 이명박 정부에선 98조8천억원으로 불어나더니, 박근혜 정부에서는 올해 예산과 내년 재정운용계획대로라면 167조원으로 불어난다. 연평균 33조원의 빚을 내 어디에 다 쓰고, 겨우 2조원을 못 주겠다고 하는 것인가? 정부가 담뱃세를 올리면서 국세를 신설해 지난해 한 해 동안 더 거둬들인 세금만도 1조원이나 된다.

정남구 논설위원

정부와 새누리당이 그렇게 악착같이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교육청에 떠넘기려는 것은 지방자치를 귀찮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돈줄을 죄어 무릎을 꿇려, 그저 시키는 대로 중앙정부의 사무나 대신 처리하는 사무소로 만들자는 속셈일 것이다. 지방자치 없인 민주주의도 없다. 누리과정 예산을 약속대로 중앙정부가 책임지게 해야 할 더 중요한 이유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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