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칼럼] 미생이 완생할 수 없는 한국

2015. 11. 2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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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교수

청년세대의 꿈이 ‘취업’이다. 꿈이란 현실에서 이루기 어렵지만 아름답고 이상적인 바람이다. 그런데 가장 현실적인 삶의 기본이 되는 일자리를 갖는 것이 청년들의 바람이다. ‘꿈’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변질되었거나 아니면 한국이 청년들에게 삶의 기본조차도 마련해줄 수 없는 참담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무엇이 진실일까. 젊은이들이 삼성전자·현대자동차와 같은 초대기업들과 은행과 같은 대형 금융회사들을 ‘꿈’의 직장이라고 한다. 그런 기업에서 일한다고 해서 자신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조직의 부속품이 되는 것이다. 다른 기업이나 조직과 다를 바가 없는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눈높이를 낮춰라, 왜 중소기업은 안 가려고 하느냐, 왜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느냐고 젊은이들을 질타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청년들이 이들 기업을 꿈의 직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극히 단순하고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평균 연봉은 3000만원이 안 된다. 그러나 꿈의 기업은 초봉이 중소기업 평균보다 훨씬 높고, 평균 연봉은 중소기업의 3배보다 많은 1억원이 넘는다. 청년세대를 질타하는 기성세대가 청년이었던 시절에는 이렇지 않았다. 80년대 중반까지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격차는 10% 미만이었고, 외환위기 이전까지 90년대에도 20% 내외였다. 그러나 지금은 중소기업 평균임금은 대기업의 절반이다. 뿐만 아니라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는 노동자 10명 중에서 4명이 대기업에서 일했지만, 지금은 2명도 안 된다. 지금은 절대 다수인 8명이 대기업의 절반의 임금을 받고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청년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취업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10명 중에 5명만이 정규직으로 첫 일자리를 시작하고, 그중에 대기업에 취업하는 행운아는 2명뿐이다. 나머지 3명은 비정규직으로 시작하고, 2명은 ‘취준생’이라고 불리는 실업자다. 꿈의 직장을 차지하는 ‘엄친아’는 100명 중에 2명도 안 된다. 중소기업에서 시작해 나중에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10명에 1명이니 첫 취업보다 더 어렵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사람은 노동법이 정하고 있는 2년이 지나도 10명 중에 2명뿐이다. 나머지는 비정규직을 계속하거나 실업 상태가 된다. 청년들에게 주어진 일자리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꿈’의 직장에 가기 위해 젊음의 많은 것을 바친다.

 세계에서 둘째로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가는 이유도 취업이다. 대학에서 그들의 관심은 학문이 아니라 오직 학점이다. 대학에 낭만과 학구열은 사라지고 경쟁과 학점열만 남아 있다. 등록금보다 더 비싼 학원비를 내고 영어를 배우고 자격증을 따는 것이나 봉사활동이나 동아리활동을 하는 것도 기업들이 요구하는 자기소개서에 스펙 한 줄 더하기 위한 것이다. 많은 청년이 ‘나만은 된다’고 스스로 긍정하고 힐링하면서 자기계발을 하며 노력하지만 여전히 꿈의 직장에 취업하는 사람은 100명 중 한 명이고, 정규직 일자리에는 2명 중 한 명만이 취업이 되고, 나머지는 잉여나 3포로 불리는 미생으로 남게 된다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다.

 비정규직 청년의 아픈 이야기로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렸던 ‘미생’에서 장그래는 모든 것을 걸고 노력했지만 완생하지 못하고 미생으로 남았다. 장백이가 장그래와 다른 길을 간 것은 노력이나 능력보다는 운이 좋은 것이거나 좋은 대학을 나온 기득권 덕분이었다. 장그래를 아꼈던 오상식이 창업을 했지만 그도 미생이기는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이 성장해서 대기업이 되고, 재벌기업이 되는 성공신화가 한국에서 사라진 지가 오래되었다. 절반의 임금을 받고 중소기업에서 일하더라도 기성세대가 젊었을 때처럼 직장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라는 희망으로 일했던 것은 옛날 이야기다. 재벌기업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 시장에서 중소기업과 창업의 성공이란 대기업의 하청기업으로 살아남는 것일 뿐이다.

 국민들의 절대 다수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불평등, 그리고 원청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한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장그래와 오상식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대다수가 미생이다. 그러면 국민들이 완생할 가능성은 있는가?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미생들을 완생으로 이끌어 가는 대통령, 정치인, 재계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 더욱 암담한 것은 한국 미래의 주역인 청년세대가 희망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개인의 절망은 개인적인 아픔이지만, 한 세대의 절망은 국가적인 위기다. 누가 완생의 한국을 만들 것인가?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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