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의 단언컨대] 박근혜, 실수하고 있다

정리 | 정희완 기자 2015. 10. 1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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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이 잇따라 집필 거부를 선언하는 등 불복종·저항 물결이 사회 각계로 확산되고 있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사진)은 16일 공개한 팟캐스트 <이대근 단언컨대> 제95회 ‘박근혜, 실수하고 있다’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성공하기 힘든 이유를 짚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 ① 시간이 없다

정부는 국정 교과서 집필을 1년 안에 끝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과서 집필과 제작은 2~3년 걸리는 작업이다. 우편향, 왜곡 비판을 받았던 교학사 역사 교과서의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졸속 제작 때문에 교과서 내용에 사실 왜곡 및 누락이나, 독재 미화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국정화를 중단하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제작 강행은 쉽지 않을 것이다.

② 1년 내내 이념 갈등 견딜 수 있나

앞으로 1년 내내 나라가 교과서라는 하나의 의제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필자 선정, 서술 기준 및 내용의 타당성, 구성 등 크고 작은 문제 하나하나에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그에 따라 한국 전체는 과거사 논쟁, 역사 논쟁,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갈 것이다. 청년 실업, 비정규직, 사회 양극화 등 산적한 문제를 뒤로 물린 채 정권이 과거사에 허우적거릴 때 시민들이 가만히 지켜봐 줄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대통령이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한다고 과거사로 나라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도 시민들이 참고 견뎌줄 것인지, 시민들의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일지도 변수이다.

국정 교과서 반대 청소년 행동 소속 학생들이 17일 서울 인사동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자유 발언 행사에 참석해 손팻말을 들고 있다. 강윤중 기자

③ 교과서 쓸 적임자를 구할 수 있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전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 개발 사업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건설업자에 떠맡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건설업자가 아니다. 웬만한 역사학자들은 집필 거부를 하고 있다. 정부는 역사가가 아니더라도 정치학자, 사회학자도 참여시킬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역사책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④ 어용 낙인 극복할 수 있나

우여곡절 끝에 집필자를 모집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어용학자, 어용 역사학자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있다. 국정 교과서도 어용 교과서라는 별명을 얻을 것이다. 모두가 피해야 할 더러운 물건 취급을 받을 것이다.

⑤ 계속 집권 보장할 수 있나

새누리당은 야당 때 검정 체제를 주장했다. 지금은 국정화로 전환했다. 현재 야당이 집권해서 새누리당 관점에서 좌편향으로 국정 교과서를 제작할 때 새누리당이 국정화한 의도가 사라진다. 진정 원칙을 지키는 새누리당이라면 국정 반대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신 교과서를 우편향으로 고쳐달라고 호소해야 한다. 물론 다시 검정체제로 바꾸자고 할 수도 있다. 대신 원칙이고 명분이고 논리고 다 집어치워야 한다. 이런 곤란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계속 집권하는 수밖에 없지만 현재 집권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렇다면 지금 새누리당은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⑥ 가르칠 만한 내용 채울 수 있나

근현대사를 제대로 쓸 필자도 구하지 못하고 시비를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근현대사 부분의 분량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있다. 사실상 근현대사를 안 가르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기모순이다.

온갖 난리법석을 떨면서 국정화로 전환한 이유가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자는 것이었는데 결국 정권 자체의 한계 때문에 가르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 가르치려고 국가적 갈등과 분열의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곰곰 생각해 볼 문제다.

이런 결과는 또한 “안 가르치는 게 교육인가?”라는 의문을 낳는다. 근현대사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의 사회가 만들어진 과정이 바로 거기에 있고, 여러 난관과 모순을 어떻게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렀는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소화한다면 결국 반교육적 조치로 귀결되는 것이다. 게다가 ‘모르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는 자가당착 혹은 맹목에 빠지게 된다.

■ 다시 확인된 무능 ① 문제 해결 못하는 대신 문제 제거

박근혜 대통령은 문제가 생기면 문제의 본질에 천착해서 해결할 줄 모른다. 아마도 그럴 능력이 없거나 문제 해결의 절차나 과정을 거치는 게 귀찮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해법이 등장했는데, 바로 문제 자체를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당시 김대중 후보와 경선한 대통령 선거에서 겨우 8% 차이로 이겼다. 권력 유지에 불안감을 느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결국 10월 유신을 단행, 장기집권의 길로 들어선다. 경쟁 제도 자체를 제거해 버리는 해법을 택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2013년 우익 왜곡 역사교과서인 교학사를 제작했지만 채택률 0%에 가까운 대실패를 겪자 위기감을 느끼고 교과서 경쟁 체제를 아예 없애버리기로 했다.

앞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첫 사례다. 마음에 들지 않자 뒷조사를 해서 축출해 버렸다. 세월호 참사 때는 해경을 구조조정하고 바로 잡는 대신 해체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역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만나 대화로 풀어야 하는데, 대신 측근 의원들을 동원해 숙청했다. 북한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미 대화 통로를 열어주거나 6자 회담을 개최해야 하는데, 통일하면 북핵이 저절로 해결된다며 북한 붕괴, 북한 제거를 북핵 해법으로 제시했다.

② 아베만큼도 못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과거사 싸움을 하는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최소한 검정 교과서 제도를 통해 자기가 원하는 대로 과거사를 왜곡하는 능력이 있다. 박 대통령은 그런 능력도 없다.

■ 그러나 박 대통령은 남북 이질성 극복에 기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하나로 남북 간 이질성 극복, 동질성 회복을 제시한 바 있다. 남북 대화 단절로 대북정책의 핵심에서는 실패했지만, 적어도 이질성 극복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① 1인 체제

북한은 1인만이 권력을 갖고 있는 수령제다. 그러나 남한은 입법·사법·행정부 등 3권이 분리 독립돼 상호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체제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들어서 오직 대통령 1인에 권력을 집중시켰다. 교과서 국정화도 이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남북은 이제 권력 구조에 관한 한 거의 일치점에 이르렀다.

② 국정 교과서

북한은 유일사상 체계에 따라 역사관도 하나로 통합돼 있다. 남한은 다원주의에 따라 다양한 교과서가 가능한 검정체제로 북한과 다르다. 그러나 이번에 남한이 북한 모델을 100% 따르기로 하면서 완전히 같은 체제가 됐다.

③ 주체사상 교육

북한은 교과서에서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남한은 교과서에서 주체사상을 비판하고 있다. 큰 차이가 난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 따르면, 그 동안 교과서가 우리 아이들에게 몰래 주체사상을 가르쳐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제 남북은 교과서에서 주체사상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하나가 됐다.

④ 공산주의

박근혜 대통령이 발탁한 주요 공직자 중 최소 두명은 남한의 웬만한 지도자를 ‘종북’이거나 전·현직 공산주의자 아니면 최소한 변형된 공산주의자로 규정했다. 신뢰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이 중용한 인사이니 그들의 말을 신뢰한다면, 남쪽에는 공산주의자가 넘쳐나는 사회다.

⑤ 노·장·청 조화

북한의 인사 정책은 노·장·청 조화이다. 박근혜 정권은 그동안 노인을 주로 등용하는 노인정치를 해왔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 필진을 노·장·청으로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사 정책 일부분에서나마 남북간 일치를 보게 됐다. (이 정도면 당장 통일해도 되지 않을까?)

■ 국정화 미스터리 이해하는 세 개의 가설 한국인구가 5000만이다. 이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5000만개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역사를 보는 시각 역시 5000만개일 수 있다. 물론 이건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어쨌든 역사관은 각자의 처지와 입장, 신념과 가치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걸 단 하나로 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박 대통령의 결심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세 가지 가설을 제시해 본다.

① 국정화는 국정(國政)이 아닌, 박근혜 개인 민원?

“아버지 시대의 역사가 얼룩져 있는 것을 딸로서는 그냥 보고 넘어갈 수가 없다. 마침 대통령도 되었는데 박정희가 오랜 숙원인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복권, 아버지 명예회복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남은 2년 임기를 그냥 물러난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다. 내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겠나. 권력이 있을 때 해치워야 한다.”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국정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② 자기 이념의 표현

“내 역사관은 확고하다. 한국의 역사는 우파에 의한 승리와 영광의 역사였고, 그걸 주도한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건 내 소신, 내 철학이자 나의 이념이다. 나는 그 이념에 헌신하고자 한다. 정치적 목적? 그런 것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매우 순수하다.”

사실 역사 교과서에 ‘올바른’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이 같은 심경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는 올바른 것과 올바르지 않은 것밖에 없다는 식으로 인식하는 이런 종교적 확신, 절대적 믿음이 없으면 이렇게까지 무리수 쓰는 태도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③ 순교자적 결단?

“국정화를 강행하는 것은 사실 정치적으로 손해 보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논개가 적장을 안고 강물에 뛰어들었듯 악마로 보이는 검정 교과서를 죽이는 길은 그걸 끌어안고 강물에 뛰어드는 것밖에 없다.”

사실 순교자가 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없으면 이런 역풍을 견뎌내며 강행하기가 쉽지 않다.

■ 지난해 1월에 있었던 일 하나 뉴욕 타임스는 지난 13일 한국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비판하는 사설을 썼다. 지난해 1월에도 ‘정치인과 교과서’라는 제목의 사설을 쓴 적이 있다. 이 때 외교부는 뉴욕총영사 명의의 반론문을 냈다.

“한국은 역사 교과서를 민간 출판사가 출간하고 전문가들이 독립적, 객관적으로 검정을 하고 있어 정부가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있다…박 대통령이 특정 정치견해를 반영하도록 교과서 수정을 강요하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일본은 일본정부가 교과서에 정부의 견해를 반영하도록 하는 검정기준을 갖고 있지만 한국은 그런 게 없다.”

질문을 해보자. 이제 뭐라고 주장할 건가? 정부가 솔직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반응하기를 기대한다.

“한국은 역사 교과서를 민간 출판사가 출간할 수 없고 전문가들이 독립적, 객관적 검정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완전히 개입하고 있다…박 대통령이 특정 정치견해를 반영하도록 교과서 수정을 강요하는 것은 완전히 진실에 부합한다…일본은 일본정부가 교과서에 정부의 견해를 반영하도록 하는 검정 기준을 갖고 있지만 한국은 이제 그런 게 없다. 국정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리 | 정희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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