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중국 자본에 종속당한 한류

고규대 2015. 4. 23. 08: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데일리 연예스포츠 부장 고규대] 동남아 중심국가 중 하나인 태국은 말 그대로 한류(韓流), 화류(華流), 일류(日流)가 뒤섞인 전투 현장과 같다. K팝을 중심으로 한 한류의 득세로 태국 대중문화가 한류의 영향을 받아 변모하고 있다. 중국어권 국가의 특성상 전반에 스며든 중국 문화의 특징 역시 빼놓을 수 없고, 이미 일본 문화는 자동차 오토바이 등으로 태국인에게 친숙하다.

“태국에서 2014년만 무려 140차례 한류 관련 이벤트가 열렸어요.” 태국 현지에서 한류 공연을 기획하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 가수의 공연 티켓 가격은 최대 5500바트(약 18만 원) 정도다. 보통 태국 직장인 월급의 1/3 정도의 가격이다. 그럼에도 한류 콘서트를 보고 싶어하는 자녀를 위해 기꺼이 돈을 쓴다. 어느 나라나 부모의 마음은 다름 없다.

말 그대로 문화 전쟁의 총성 없는 현장이다. 중국의 성장과 일본의 반격 등을 맞닥뜨린 한류는 위기다. 중국이 막대한 돈으로 한류 콘텐츠 인력과 기업을 사들이면서 이러다 한류를 통째로 잃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류 콘텐츠 생산의 주역이 중국행에 나서면서 ‘중국 한류는 이제 기껏해야 2~3년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분석도 나온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장태유 PD가 중국에서 드라마 작업을 시작했고, 최근 ‘쌀집 아저씨’로 불리는 ‘나는 가수다’ 김영희 PD가 중국으로 건너갔다. 한국을 대표하는 콘텐츠 제작자들의 중국행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스카우트에 이어 한류 콘텐츠를 공장을 사들이기도 한다. 드라마 ‘올인’, ‘일지매’ 등을 제작한 초록뱀 미디어가 최근 중국 자본에 넘어갔으며, 1000만 관객의 영화 ‘변호인’을 배급한 영화사 ‘NEW’도 중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2대 주주가 됐다.

한중 FTA가 타결됨에 따라 TV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중국과 공동제작을 해야 한다. 중국이 지난 4월 초부터 온라인에서 방영되는 해외제작물에 대해 6개월 사전심의를 받도록 규제를 강화해 국내 드라마의 중국 인터넷 전송권 판매액이 급감했다. 한 때 회당 28만 달러에 육박하던 한국 드라마는 이제 회당 10만 달러 남짓으로 폭락했다. 중국의 전략은 장벽을 더 높이 쌓는 대신 그 장벽 안으로 우수한 콘텐츠 제작 인력을 흡수하는 양동작전을 펼치고 있다.

일본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일본은 총무성 아래 ‘쿨 재팬(Cool Japan)’이라는 제목의 전담 부서를 만들어 자국의 대중문화를 동남아에 전파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쿨 재팬’은 문화 대국으로서의 일본의 지위에 대한 높이겠다는 표현으로 민간이 아닌 정부 주도의 소프트파워 전략이다. 일본은 자국에서 한류가 인기를 모으자 큰 충격을 받고 의도적으로 혐한류를 부추기면서 다른 나라에 자국의 문화를 전파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 걸그룹 JKT48이 일본 유명 아이돌 그룹 AKB48과 자매 그룹 형태로 론칭되거나 태국에서 일본 문화를 그대로 담아낸 ‘라이징 선’이라는 드라마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된 것도 ‘쿨 재팬’의 결과이다.

안팎으로 치이면서 한국 대중문화가 대만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때 중국 대중문화 시장의 큰 손이었던 대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2000년 초반만 해도 대만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은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꼽혔다. ‘판관 포청천’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된 ‘꽃보다 남자’ 등 화제의 드라마를 연이어 만들어냈다. 그로부터 10년. 대만은 중국 대중문화의 하청업체로 전락했다. 중국은 대만 배우와 제작인력을 블랙홀처럼 흡수했다. 요즘 대만에서 방송되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은 저예산으로 제작하는 게 대부분이고, 그나마 자본이 투여된 작품은 중국 방송을 염두에 둔 것이다.

최근 정부는 콘텐츠산업 발전 위한 한중 정부 간 다자협의체 본격 가동한다면서 범정부 해외콘텐츠 협의체 구성,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를 이끄는 콘텐츠 강국 기반 조성 등을 발표했다. 어찌 보면 한중 문화산업 공동발전펀드 조성 등과 달리 구체적이지 않은 선언적 표현에 불과하다. 민간은 한류의 제작 인력부터 방송까지 튼튼한 구조를 갖춰야 하고, 정부는 큰 틀에서 대중문화의 발전과 확산에 힘을 써야 한다. 한국이 대만의 전철을 밟고 중국의 하청업체로 전락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고규대 (enter@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