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김근태를 그리워하며 / 최상명

2014. 12. 8. 19: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12월30일은 김근태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그가 떠난 뒤 지인과 후배들은 '민주주의자'라는 이름을 그에게 바쳤다. 그러나 김근태의 마지막 당부였던 '2012년을 점령하라!'에는 실패했다. 점령에 실패한 결과는 섬뜩할 지경이다. 서민의 삶은 피폐해지고, 인권과 민주주의는 갈수록 휘청거리고, 근거도 비전도 없는 정책들이 난발하고, 정치는 희망은커녕 절망을 안기고 있다. 힘들고 안타까울수록 김근태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김근태라면 지금 어떻게 했을까? 바보 같은 김근태는 역시나 자기반성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우리가 처한 암담한 현실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민주정권 10년에 있다. 기적처럼 탄생했고 10년을 책임졌지만 역사의 방향을 바꾸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드는 데 실패했다. 외환위기라는 불리한 여건에서 시작했지만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기에 변명이나 위로가 될 수 없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성장 패러다임에 묶여 재벌과 타협하고, 사대화된 관료들에게 포섭된 채 신자유주의를 무방비 상태에서 수용하고 말았다. 민주정부 10년의 오류가 빈사상태의 한나라당을 살려내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킨 촉매자가 되는 역설을 만들어 냈음을 인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가 바로 서야겠지만 자기반성보다 책임 전가와 분열이 앞서는 작금의 야권에 기대어 국민적 희망을 만들어 가는 것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야권 스스로 변하지 못한다고 비난만 한다면 세상은 더욱 참혹하게 변할 뿐이다. '참여하는 자만이 권력을 만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김근태의 마지막 말은 정치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희망은 힘이 세다'고 말했던 김근태의 희망은 바로 우리 시민이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열심히 참여했는가, 얼마나 절실했는가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좋은 나라,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선후가 있을 수 없다. 우리 시민사회가 정치권보다 한 발짝 먼저 내딛고 더 강하게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서민과 노동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냉혹한 겨울을 맞이하고 보니 김근태의 '참여하라'는 말은 120년 전 갑오 백만 농민들이 그랬듯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개화기를 시민사회가 열어야 한다는 절규처럼 들린다.

87년 민주혁명 이후 시민사회는 파편화되었다. 절차적 민주화가 성립되었다는 안도는 이내 방심으로 전환되어 민주개혁 세력은 정치권 안팎 모두 무능에 무기력을 더해갔다. 민주주의로 위장한 겉모습에 신자유주의가 결합되자 민초들의 삶은 워킹 푸어, 하우스 푸어, 에듀 푸어로 몰락하고 말았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인식과 사회 전체를 박제화된 민주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가 보살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이 오히려 한계생활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짓의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저항과 도전은 시작됐다. 강정과 밀양의 눈물겨운 투쟁, 삼척의 시민투표 그리고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은 개별적인 운동이 아니라 박제화된 민주주의를 바꾸려는 일관된 흐름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투쟁과 운동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참다운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은 개별이 아닌 연대로, 분산이 아닌 집중으로, 원심이 아닌 목표 지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보호와 연대임금운동이 노동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600만 자영업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사회경제적 인권투쟁이 될 수 있다.

새로운 길을 열고 그 길로 함께 나서기 위한 성찰과 결단, 용기와 지혜가 절실한 시대이다. 이럴 때일수록 기대만큼 더 잘하지 못해 미안하다 말하며 우리에겐 늘 괜찮다고 말해주던 김근태의 빈자리가 커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김근태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솔직하지만 따뜻한 리더십, 원칙과 대의를 처절하게 고민하면서도 절대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 리더십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리더십이라야 혼돈 속에 길을 잃은 진보진영에 새로운 질서와 방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김근태를 그리워한다'라고 쓰고 '김근태 리더십을 기다린다'라고 읽는다.

최상명 우석대 김근태연구소 소장

<한겨레 인기기사>■ 썰렁한 '진돗개 개그'에 배꼽 잡을 때 국민은 한숨만…"'라면 상무' 비난했던 조현아, '땅콩 부사장' 등극"정윤회 보고서 "이정현, 근본 없는 X이 대통령 믿고 설쳐"[포토] "아! 2014년"…보도사진 수상작들로 본 '격동의 현장'[화보] 비행기 창가 좌석에서 촬영한 황홀한 풍경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