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혁신학교 학부모를 잊지 말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만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 누구를 찍자고 선거운동을 한 적이 없는 사람들도 움직였다고 한다. 혁신학교의 학부모들이다. 이들은 지난 서울교육감선거에서 조희연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주변 지인들에게 카톡을 날리고 아파트 사람들을 만나서도 의식적으로 교육감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지하철역 앞에서 피켓을 드는 것 같이 더 적극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이번 교육감선거는 절실했다. 자녀가 다니는 혁신학교가 사라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학부모는 자녀가 학교에 볼모로 잡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학년 초가 되면 어떤 사람이 담임이 될 것인지 로또 뽑는 심정이라고 한다. 혁신학교는 이런 조마조마함에서 그를 해방시켜주었다. 무엇보다 학교가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다. 교장부터 담임 그리고 다른 학부모에 이르기까지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학교 안에 '아버지 밴드'와 같은 학부모들의 동아리도 생겼다. 학교 안에서의 만남이 활성화되자 동네에서도 학부모(=주민)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활발해졌다.
그런 혁신학교가 이번 교육감선거에서 운명이 갈린다고 생각하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보수교육감이 들어서자 혁신학교에 칼을 대기 시작하여 많이 위축된 터였다. 예산낭비며 특혜라며 혁신학교를 재지정하지 않겠다는 말도 나왔다. 혁신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은 올해 들어온 후배들이 "혁신학교로 들어왔다가 일반학교로 졸업하게 되어 안됐다"고 말했다. 그러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물론 혁신학교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무엇보다 교사의 열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열정적인 교사는 소진되기 쉽고 그렇지 않은 다른 교사들은 떨어져나갈 수 있다. 교육이 주로 중산층들의 관심이다 보니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주변의 아파트값이 오르면서 가난한 학생들은 밀려나는 경우도 있다. '내 아이' 중심도 여전히 심각하다. 무엇보다 입시에 발목 잡힌 한국 교육의 현실상 초등의 경우는 만족도가 좋지만 고등으로 갈수록 불안감이 높아진다. 정치적으로는 수구보수세력이 혁신학교가 얼마나 자신들에게 치명적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파상적인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혁신학교 시즌2가 시즌1보다 훨씬 더 힘들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힘들수록 진보교육감이 해야 하는 일은 명확하다. 다시 선거과정을 돌아보자. 이번 서울교육감선거에서 조희연 교육감이 당선되는 데는 많은 '우연'들이 작동했을 것이다. 보수 측 후보의 난립이 있었고 세월호 사고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고승덕 후보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이런 우연적 요소들이 더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선거의 결과를 '요행수'라고만 생각할 수 없다. 정치란 그 수많은 우연들 중에서 필연인 것을 골라내고 확장하고 확대하여 다음번에는 당선을 필연으로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 수많은 우연들 안에서 조희연을 교육감으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 혁신학교의 학부모들이 있다. 그만큼 그들은 절실했고 그 절실함이 그들을 움직였다.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혁신학교처럼 이런 절실한 마음이 만나고 모이는 장이 많아지는 것이 교육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가게 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진보교육감들이 정말 잘해주시기를 절실하게 바란다. 절실함이 기쁨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말이다.
< 엄기호 | 덕성여대 강사·문화인류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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