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시민은 정치적이어야 한다

최병준 사회부장 2014. 5. 18. 20: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라."

충분히 예상했던 말이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만이 아니라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집회가 벌어질 때마다 보수 세력은 '정치적 의도'를 운운했다. 대통령의 책임을 주장하기라도 하면 '불순하다'고 우겨댔다. 이들은 정치적이라는 단어를 자신들의 이해를 달성하기 위해 권모술수를 쓰는 것으로 폄훼한다.

나는 시민들이 정치적이어야만 세상을 안전하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시민들이 정치·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배제될 때, 앞으로 이런 참사는 또 터질지 모른다. 지금 시민생활과 정치는 물과 기름처럼 괴리돼 있다. 정치는 국회의원이나 행정가들만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시민들은 정치가들이 하는 일을 보는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정치학자 매튜 크렌슨은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어려운 사회에서 시민은 주인이 아니라 고객으로 인식된다고 했다. 시민과 고객은 큰 차이가 있다. 시민은 정부를 소유하는 존재로 인식되었지만 고객은 정부로부터 행정 서비스를 받는 대상으로 간주된다. 시민이 정치적 주체가 아니라 고객이 될 때, 정치인들은 시민을 마케팅 대상으로 생각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보편적 복지 확대에 한결같이 반대해왔던,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신앙처럼 믿고 규제 완화를 외쳤던 새누리당이 지난 대선 때 느닷없이 복지 공약을 내걸어 박근혜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신념이 바뀐 것이 아니었다. 그저 선거 마케팅이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은 집권 후엔 자신의 복지 공약을 완전히 뒤집었다. 시민들이 분노하고 시민사회단체와 언론이 강하게 비판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마이웨이를 가고 있다.

행정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객(시민)이 가게(집권당)를 바꾸면 새 가게 주인(야당)이 잘할 수 있을까.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의 노인연금공약 후퇴를 강하게 비판해오더니, 온 국민이 세월호 희생자 구조와 수습에 가슴 졸이고 있을 때 새누리당의 연금안을 통과시켜줬다. 새정치연합 역시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마케팅에만 골몰하다 노인표를 의식해 '사고'를 쳤다. 그들 역시 정치적 신념보다 마케팅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새누리당의 지지율만 떨어진 것이 아니라 새정치연합의 지지율도 뚝 떨어진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현재 우리는 위험사회, 재난사회에 살고 있다. 정치가 중요한 것은 정치가 위험을 관리하고, 배분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시민의 안전보다 기업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왔다. 규제를 완화해준다며 노후선박도 운항할 수 있도록 선령을 연장시켜준 것은 이명박 정부였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질 자리에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을 썼다. 세월호가 아닌 다른 여객선이라도 비정규직 직원들이 화물적재량이 규정 이상으로 많다고 선박 운항을 강하게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해경은 수난구조법 개정 당시 해경이 장비를 구입하는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민간 네트워킹을 이용하겠다며 구난 업무에 민간업자들의 개입을 확대했다. 공공성이 강한 지하철은 적자를 개선하겠다며 안전 관리를 담당하는 정비인력을 구조조정했다.

이런 식의 사람보다 기업 우선 정책은 가난한 시민들을 더 가난하게 하고, 탈정치화시킨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을수록 약자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어지게 된다. 시민들은 "정치판에서 그놈이 그놈이다"라고 외면해버린다.

신자유주의 정부도 안전을 추구한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꾼 박근혜 정부에서 안전의 핵심은 치안과 공안이다. 규제 완화를 내세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신앙처럼 여기는 보수 우익이 집권한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워지고 있는 갈등의 현장은, 노동과 자본이 대립하는 곳이다. 세월호 참사로 정부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 와중에 박근혜 정부는 공안검사 출신의 김수민 전 인천지검장을 국가정보원 2차장에 임명하고, 5·16 군사쿠데타는 혁명이라고 주장했던 박효종 전 서울대 교수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내정했다.

안전은 시민의 정치 참여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국내외의 학자들도 민주주의의 문제를 지적했다. 해외에 체류 중인 학자 1074명이 발표한 성명에서도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와 민주적 책임 결여"가 문제라고 했다. 시민이 정치적이어야 안전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시민이 나서야 세상이 바뀐다.

< 최병준 사회부장 >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