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대한민국호는 이미 침몰 중이었다 / 김동춘

입력 2014. 4. 21. 19:00 수정 2014. 4. 2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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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슬프다. 참 많이 슬프다. 80년 5·18 때는 분노가 컸지만, 이번에는 슬픔이 분노보다 크다.

세월호 사고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살릴 수도 있었을 수많은 어린 목숨을 결과적으로 바다에 수장시킨 이 정부의 대처 과정에 대한 의혹이 가중되면서 그 실상도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조난 및 구조 과정에 대한 정보는 통제되고 있고, 희생자들의 항의는 경찰력에 의해 봉쇄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이미 바닥 틈으로 물이 들어와 서서히 침몰하는 중이었다. 스며드는 물에 의해 매년 1만6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비자연적인 이유로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지만, 이번처럼 외부의 충격을 받아 배에 작은 구멍이라도 나면 선실 바닥 사람들 수십, 수백명이 한꺼번에 죽기도 한다.

대한민국호의 바닥 틈은 옛날에 생긴 것도 있고, 더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만든 것들이다. 그러나 가장 큰 틈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만들었다. 이 두 정부는 김·노 정부가 틀어막으려 했던 틈을 더 크게 벌려 놓았다. 사고 배에서 탈출한 선장 1호는 이승만이다. 그때 선장과 선원들은 모두 국민들에게 배를 지키자고 거짓말을 한 다음 자신들은 탈출했다. 미국이 우리 배를 구제했다고 주장하면서 책임을 지기는커녕 공을 강조하던 그는 자애로운 아버지 이미지로 연기를 하다가 결국 국민들에 의해 쫓겨났다.

이·박 정부의 핵심 국가기관, 금융기관, 권력자들은 무수한 범법 행위를 했다. 이 모든 범죄의 윗선은 거의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고 제대로 처벌된 사람도 없다. 이 두 정부의 최고위층 상당수는 거의 크고 작은 범법 이력을 가진 자들로 채워졌고, 공직에 있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재력가들이다. 이 두 정부는 김·노 정부에서 만들어놓은 각종 안보, 재난관리 대책, 중요 국가 정보를 거의 쓰레기통에 처박아 넣거나 필요할 때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해당 분야에 아무리 높은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편이 아니면 갈아치웠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소신을 갖고서 국정원 범죄를 수사하던 검찰 총수를 핵심 국가기관을 거의 총동원하여 찍어낸 혐의가 있다. 국가의 윗자리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만으로 채웠고, 기업의 아랫자리는 모두 1·2년 계약의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이·박 정부는 기업범죄는 범죄가 아니라는 신호를 확실히 주고 있기 때문에 기업가들은 사람의 생명과 안전은 안중에 두지 않는다. 소신과 전문성 대신에 오직 충성만이 중요한 세상에서 의인은 사라졌고 아마추어들이 판쳤으며, 국민의 안전을 돌보아야 할 공직자들은 오직 위만 쳐다볼 뿐 2·3등칸 국민들을 관심 밖으로 돌렸다. 혹 몇 사람이 배의 바닥에서 물이 들어온다고 소리지르면 경찰과 검찰이 '종북파'라고 겁박을 한다.

선상 '극장'에서는 파티가 열렸고, 언론은 '행정안전'을 '안전행정'으로 바꾸었다는 식의 그들의 그럴듯한 말과 연출된 행동만 비췄다. 선상 무대의 주역들은 개인용 구명보트로 탈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을 본 대한민국호의 말단 선원들은 자기 일에 대한 자긍심, 직업의식과 책임감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권력자들이나 대기업의 범죄가 단죄되지 않고, 국민들이 그것에 항의할 수 없는 사회에서 관료조직은 억압기구에 불과하고, 국민의 주권은 상실된 상태이며, 사회는 이미 파괴되었다. 이번 사고에서 도망간 선장·선원은 윗사람들을 보고 따라한 사람일 따름이고 기업이 그들을 대우해준 대로 행동했다. 사회가 파괴되면 작은 사고도 대참사가 되고, 대참사의 희생자들은 주로 선실 바닥의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 배의 본격적인 침몰은 이제부터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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