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경기지사 선거에 눈길이 가는 이유
"해내는 사람은 길을 찾고, 못하는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무상교통이 실현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분들은 핑계를 찾았습니다. 우리는 길을 찾았습니다."(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 20일 기자회견) "무상버스 공약은 버스공영제를 일개 예산논쟁으로 변질시켰을 뿐 아니라 실현 가능성에 있어서도 허구적 주장에 불과합니다. 김상곤 예비후보는 무상시리즈의 덫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원혜영 민주당 의원, 23일 기자회견)
정치의 세계는 모질다. 40년 지기인 김상곤 전 교육감과 원혜영 의원이 한판 붙었다. 야권 통합신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경기지사 후보 자리를 두고서다. 점잖기로 소문난 이들인데, 말이 점점 거칠어진다.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김 전 교육감의 무상버스 공약이다. 그는 2015년 노인과 장애인, 초·중학생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무상버스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원 의원은 경기대중교통공사 설립을 통한 버스 공영화, 김진표 의원은 버스 준공영제 도입으로 맞서고 있다. 새누리당 후보로 유력한 남경필 의원도 버스 준공영제를 공약하며 논쟁에 가세했다. 대한민국 인구의 4분의 1이 사는데도 서울에 밀려 찬밥 신세이던 경기지역 선거가 연일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으니 흥미롭다.
단계적 무상화, 공영화, 준공영화. 어떤 방안이 더 경기도민의 복리에 부합하는지는 선거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후보 토론회가 열릴 테고, 전문가들도 공약의 타당성을 분석하지 않겠는가. 결과야 어찌되든 반가운 논쟁이다. 교통복지라는 유권자의 요구에 후보들이 응답했다는 점만으로도 고무적이다.
여의도로 시선을 돌리면 답답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방선거 출마자와 그 참모들 외에는 관심 없는 문제로 어제도 오늘도 시끄럽다. 기초선거 무공천 문제다. 새누리당이 기초선거 공천을 하지 않겠다던 대선 공약을 깬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선택이 합리화되지는 않는다. 한 중진 의원이 "죽는 줄 알면서 끌려가야 하는 숙명"이라고 했다는데, 이런 정당이 어디 있나. 약속을 지키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선거에서 시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는 일이다. '기호 2번'이 사라지면 주권자의 혼란이 커지고 민의가 왜곡될 게 뻔한데도 약속만 붙들겠다는 건 직무유기에 가깝다. 내심 '아름다운 패배'를 꿈꾸는지 모르겠으나 언감생심이다. 시민들은 기초선거 무공천 자체에 관심이 없다.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지게 되면 '그냥 패배'일 뿐이다.
야당은 지금 비정상적으로 취약하다. 선거판을 주도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이슈조차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를 돌아보라. 민주당은 천안함 사건의 후폭풍 속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이명박 정권의 북풍 드라이브에 주눅들지 않고 '전쟁 대 평화'의 구도로 맞받았다. 무상급식이라는 복지 이슈로 학부모 세대인 30~40대에게 투표장에 갈 동기를 부여했다.
이번에는 어떤가. 세상이 다 아는 이슈조차 나몰라라 한다. 간첩사건 증거조작이나 개인정보 유출사태는 야권에 '대박' 감이다. 투쟁력 있는 야당이라면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나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이미 자리에서 끌어내렸을 것이다. '별에서 온 야당'은 그러나 파괴력 있는 이슈를 외면한 채 기초선거 후보를 공천하네 마네, 최고위원제도를 폐지하네 마네로 다투고 있다. 그사이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주재하는 '극장정치'로 국민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이번주에는 옛 동독을 찾아 '드레스덴 통일 독트린'을 선포할 것이라고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8년 대선 당시 "목소리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했다. 집권하자 4000만명이 넘는 무보험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건강보험 개혁을 단행했다. 재선 후에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 중이다. 정치의 역할은 이런 거다. 신당은 지금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주고 있는가, 아니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있기는 한가. 지난 21일 한국갤럽이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은 30% 아래로 떨어졌다. 창당 선언 이후 처음이다. 안철수·김한길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은 고개 들어 세상을 봐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가치도 유권자가 공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버스 논쟁'이 '새정치'보다 유의미한 이슈임을 깨달을 때 희망이 생긴다. 김상곤의 '전복적 상상력'이든 박근혜의 '선거 감수성'이든 배워야 살아남는다.
< 김민아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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