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구자범, 그리운 지휘자 / 장원섭

2014. 3. 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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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가끔 연주회에 가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일을 10년 넘게 해왔다. 지난 2월7일엔 앨런 길버트가 지휘한 뉴욕필 연주를 들었다. 사무실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면, 예술의전당까지 40분이면 도착한다. 힘든 하루가 끝나면 음악회에 가서 음악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바람처럼 부질없는 음악이 삶과 사회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음악은 어디서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사라지는가. 클래식 음악 연주장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들은 아내는 클래식 연주장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어제 저녁 우리는 구자범 지휘자에 대한 슬픈 대화를 또 나누었다. 아내와 나는 2007년 11월2일, 윤이상 패스티벌 폐막공연에서 구자범 지휘자를 처음 만났다. 케이비에스(KBS)교향악단이 연주하고, 하인츠 홀리거와 우르줄라 홀리거가 협연한 그날 연주곡은 윤이상의 <견우와 직녀 이야기>와 <교향곡 4번 '암흑 속에서 노래하다'>였다.

연주회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열정적이고 진실한 지휘자와 첫만남을 기뻐했다. 그 후 아내는 구자범 지휘자 연주회가 언제 있는지 묻곤 했다. 2011년 구자범 지휘자가 경기필 지휘를 맡으면서, 우리는 그의 지휘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2011년 5월13일, 경기필 제121회 정기연주회에서 아내와 나는 구자범의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을 들었다. 그 연주회 소감을 나는 이렇게 썼다. "구자범은 악보 없이 연주했다. 악보 없이 연주하는 지휘자는 처음 봤다. 악보대가 없는 공간에는 그의 고뇌하는 몸짓이 춤을 추었다. 무거운 곡들을 치열한 정신으로 뜨겁게 지휘한 그의 지휘가 놀랍다. 이 맑고 가열한 정신이 잊혀진 광주의 정신이 아닐까? 음악이 오락이 아니라 고통이며 싸움임을 그는 보여주었다."

지난해 4월6일, 경기필 '류재준의 밤' 연주회가 지휘자 구자범과 마지막 만남이었다. 후드득후드득, 비가 오는 오후에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아내와 나는 서울에서 수원까지 갔다. 경기도 문화의전당 로비에서 작곡가 류재준 얼굴도 볼 수 있었다. 류재준의 <장미의 여름 서곡>으로 시작된 1부 연주회가 백주영이 협연한 <바이올린 협주곡 1번>으로 끝났다. 연주회 2부, 류재준의 <교향곡 1번 레퀴엠>이 끝나자마자 많은 관객들이 지휘자와 경기필에 기립박수를 보냈다. 아내도 의자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환상적인 연주회가 서울로 돌아가는 비 내리는 어두운 거리를 밝게 했다. 아름다운 '류재준의 밤'이 아름다운 지휘자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어 버렸다. 지금도 아내는 마지막 만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슬퍼한다.

철학을 공부한 지휘자 구자범 음악의 성격은 진실과 자유 그리고 열정이다. 열정적으로 지휘하는 그는 언제나 연주자들을 음악적 한계까지 몰고 갔으리라. 한계까지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다른 지휘자 음악과 달리 진실하다. 진실은 철학의 마음이며, 고통스러운 삶과 사회의 나침판이다. 철학은, 음악은 진실이라는 나침판으로 거짓과 싸우고 견디며 진리의 길을 찾아간다. 구자범의 지휘는 연주자와 관객 그리고 스스로를 억압하지 않아 자유롭다. 자유는 권위를 떨쳐버리려는 삶과 사회의 빛이다. 진실과 자유 그리고 열정으로 구자범은 2010년 광주에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지휘할 수 있었다.

지난해 6월, 불미스러운 일로 구자범은 지휘봉을 놓았다. 아내와 나는 그 일을 전해 듣고 너무나 어이가 없어 웃어버렸다. 구자범의 지휘를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말 같지 않은 웃기는 사건에 우리처럼 비웃었으리라. 하지만 하이에나 같은 살벌한 여론이 광풍처럼 몰아쳐 결국 뛰어난 지휘자가 무대에서 내려왔다. 구자범과의 이별은 사실 내 잘못이고, 그다음으로 아내의 잘못이다. 나와 아내는 그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음악을 그리워하는 우리는 그때 무슨 일이라도 했어야만 했다.

얼마 전에 춘천시향 백정현 지휘자가 쓴 글에서 지금 구자범이 겪는 고통을 읽었다. 객원 지휘를 부탁한 백정현 지휘자에게 구자범은 더는 지휘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구자범은 경기필에 사표를 낸 것이 아니라, 음악계에 사표를 냈다고 말했다. 이런 슬픈 언어가 철학을 공부한 음악가의 자기반성적인 자세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구자범은 지금 바닷가 동네 피아노학원에서조차 버림을 받는다고 했다. 단원들에게 아낌없이 밥과 술을 사줘, 많은 빚을 진 구자범은 몇 달 후면 파산에 처한다고 웃었다고 했다.

철학적 이성으로 말하면, 구자범은 권위적인 사회와 맞지 않는 지휘자이다. 권위적인 사회에 어울리는 음악인은 삶과 사회 그리고 연주를 거짓과 과장으로 치장하려고 한다. 진실하게 음악을 하는 것보다 거짓과 과장으로 음악을 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거짓과 과장의 음악은 예술과 진리라는 자리에 앉을 수 없다. 진실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헌신과 고통을 요구하는 진리이다. 진실한 음악이 삶과 사회를 총체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이리라.

예술과 진리의 길에 헌신했던 음악인이 버림받고 고통을 당하는 것이 지금의 어두운 현실이다. 하지만 진실한 음악은 언젠가는 빛의 세계로 삶과 사회를 이끌고 갈 것이라 믿는다. 철학처럼, 음악은 구체적으로 버림받고 빼앗긴 사람의 울부짖음에서 태어난다. 울음과 슬픔이 사무쳐서, 음악은 집을 지어 버림받고 빼앗긴 사람들을 품고 머물게 한다. 구자범 음악은 버림받고 빼앗긴 사람의 집이었다. 자유롭고 진실한 음악이 춤추던 따뜻한 집이 무너졌다. 산산조각 난 폐허에 울음소리와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음악이 길을 잃었다.

장원섭 클래식음악 감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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