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내각제 개헌을 고민해보자

우석훈 | ‘ 2014. 1. 13. 22: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를 지나면서 남은 건 자괴감밖에는 없었다. 내가 경제학자로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YS 시절이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보수당 집권기 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DJ 정부 시절에는 총리실 등 정부기관에서 일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새만금, 한·미 FTA 등을 거치면서 반정부 인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새누리당이 잘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보수가 잘해야 진보도 잘할 수 있다는 뻔한 이유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그들이 집권해도 나라가 엉망이 되지 않는다는 게 증명되어야 진보정당도 설 자리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13년, 한국은 엉망이 되었고, 경제는 더 엉망이 되었다. 그 한 해를 보내면서 태어나서 두 번째로 개헌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1987년 6월은 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 뜨거운 6월을 한열이가 몇 m 앞에서 친구들에게 들려가는 것을 보면서 시작했다. X파일로 유명해진 MBC 이상호 기자 등 그 자리에 같이 서 있던 친구들이 있다. 그때 우리의 구호가 '호헌철폐, 독재타도', 여덟 글자였다. 전두환의 헌법은 대통령을 간선제로 뽑도록 하였는데, 그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는 게 87년 6월의 구호였다. 결국 우리는 호헌 세력을 무너뜨렸고, 9차 개정헌법을 통해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게 되었다. 그렇지만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는 데에는 그로부터 10년이 더 걸렸다.

시민사회 내에서도 지금까지 개헌에 대한 내부적 논의가 여러 번 있었다. 지자체에서도 실시하는 정책에 대한 주민투표가 정작 국가 단위에서는 실시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분명히 낡은 헌법을 고쳐야 할 사회적 필요는 있다. 환경과 관련해서도 좀 더 적극적인 환경권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 개헌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냈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진짜 개헌 논의는 보수들이 주도했던 것이 사실 아닌가? 경제민주화 조항, 경자유전 조항 등 9차 개정헌법의 민주화 분위기에서 들어간 조항들을 이제는 빼고 싶어하는 재벌 등 강력한 보수 세력이 있다. 그래서 시민들의 자체 동력이 없는 상태에서 개헌을 하면 87년보다 헌법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내 나름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2013년을 거치면서 내 생각이 바뀌었다. 유럽식 다당제의 근간에는 내각제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독일 메르켈 총리도 단독 집권이 아니라 연정이다. 만약 우리가 연정 상태였다면, 경찰들이 노조 본부로 그렇게 밀고 들어가는 일이 벌어질 수가 없다. 그러면 연정 깨진다. '내가 민영화 아니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사회적 대화 없이 총리 혼자 자신을 믿어달라는 말은 발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나는 대통령 중심제를 지지했다. 어차피 보수가 강한 한국, 대통령이라도 바꾸어서 정부를 바꿀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2013년을 보면서 그리고 2014년의 정부 경제운용 기조를 보면서, 누군가 내각제 개헌을 내세우면 반대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바꾸었다. 일본식 장기집권이 두려웠던 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렇지만 일본 자민당도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적이 있다. 무엇보다 일본은 1인 중심체계는 아니다. 최소한 지금의 1인 중심 한국 정부보다는 나은 것 아닌가?

문재인 의원, 안철수 의원에게 부탁하고자 한다. 기왕에 개헌에 대한 고민을 사회적으로 한다면, 내각제 혹은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논의도 테이블에 올려주셨으면 한다. 두 집단이 50% 지지를 넘기면 연정으로 정권을 가져올 수 있다. 연정의 팽팽한 긴장감, 이게 새 정치의 요소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 대통령은 너무 긴장감이 없다. 구조와 개인의 문제가 결합된 시스템 오류, 내각제 개헌이 한 해법이 될 수 있다. 대통령제를 없애거나, 프랑스처럼 대통령에게는 외교만 맡기거나….

< 우석훈 | '88만원 세대' 저자·경제학 박사 >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