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여론 왜곡하는 여론조사들

홍영림 여론조사팀장 2013. 9. 30.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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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50.4%, 당선 확실.' 작년 12월 19일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와 여론조사 회사 리서치뷰가 실시해서 대선 투표 종료 직후 발표한 예측 조사 제목이다. 지상파 3사 출구 조사와 달랐던 이 조사에 대해 일각에선 "여론조사 회사 대표가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기 때문"이란 말이 나왔지만, 개표 결과가 곧 나올 시점에 일부러 틀린 조사를 발표할 리 없기 때문에 '실력 부족'이 원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리서치뷰는 이후에도 야권 쪽 견해와 가까운 조사 결과를 다수 내놓았다. 그중엔 '전직 대통령 호감도, 노무현 36% 박정희 34%'(5월 14일) '박근혜 정부 언론 자유, 나쁜 편 47% 좋은 편 31%'(7월 8일) '국민 58%, 국가기록원이 정부·여당 위해 NLL 대화록 숨겼을 것'(7월 23일)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검정 승인 취소해야 46%, 승인 찬성 26%'(9월 10일) '채동욱 검찰총장 직무 지지도 69%'(9월 17일) 등이 있다. 8월 말 정부 출범 6개월 조사에서는 박 대통령 지지도가 46%로 지상파 3사 조사의 64~70%보다 20%포인트가량 낮은 것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 사이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란 반응이 있었다.

얼마 전 한겨레신문·리서치플러스 조사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었다. '채 총장에 대한 조선일보의 혼외 자식 의혹 보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고위 공직자의 공적 업무와 상관없는 사생활 문제이기 때문에 사실관계 확인 없이 함부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69%, '고위 공직자에 대한 언론의 검증 보도이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25%였다. 하지만 어떠한 사안이라도 '사실관계 확인 없이 함부로 보도'하는 것에 대해선 당연히 다수가 "안 된다"고 대답할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감정이 실린 단어는 응답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질문은 가치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쓰지 않지만, 이 질문은 '사실관계 확인 없이' '함부로' 등 격한 감정의 단어를 아무런 근거 없이 사용했다. 채 총장의 주장과 같은 '혼외자(婚外子) 보도는 거짓'이란 인식의 틀을 응답자에게 제공해서 응답에 영향을 주는 이른바 '프레이밍(framing)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질문지에 오류의 지뢰를 매설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 조사는 다른 조사 결과와 정반대였다. KBS· 미디어리서치 조사는 '채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에 대해 '중요 공직인 검찰총장의 도덕성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49%)가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검찰총장을 밀어내기 위한 의혹 제기'(38%)보다 많았다. 문화일보·엠브레인 조사도 채 총장 의혹과 관련해 '일부 언론의 보도를 신뢰한다'(42%)가 '채 총장 주장을 신뢰한다'(26%)보다 많았다.

여론조사가 '과학'인 이유는 질문지 작성과 표본 추출 등을 과학적 방식으로 진행해서 여론을 객관적으로 읽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가 미리 의도한 결과를 '생산'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더 이상 과학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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