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생로병사] 프로 게이머와 게임 중독자의 차이는?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2013. 9. 3.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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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틈만 나면 컴퓨터 게임을 하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스마트폰을 끼고 살건, PC방에 눌러앉건 그들은 온종일 게임만 생각한다. 평소 밖에서 운동하며 노는 걸 좋아하던 아이도 게임에 과몰입하게 되면, 그 안에 갇혀 디지털 폐인이 돼간다. 처음에는 숙제를 빼먹고, 나중에는 학교를 빼먹는다. IT 신동이 거짓말, 도둑질, 가출, 해킹을 해서라도 게임을 갈망하는 IT 괴물로 커간다. 결국 게임을 더 많이 해야만 새로운 흥분이 일어나는 중독 상태가 된다.

차라리 이런 아이를 프로 게이머로 키우면 어떨까. 공부는 애당초 틀렸고, 어차피 온종일 게임만 생각할 텐데, 직업적으로 키우면 좋지 않겠느냐고 흔히들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게임 중독자는 프로 게이머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논문은 우리나라에서 나왔다. 지난해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팀은 프로 게이머와 인터넷 게임 중독자의 뇌를 MRI로 비교 조사한 연구를 내 놓았다. 그 결과를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프로 게이머의 뇌는 중독자보다 뇌의 대상피질이 커져 있었다. 이 부위는 뇌 속에서 행동 전략을 짜고 실천을 위한 통제력을 조절하는 부위다. 반면 중독자의 대상피질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대신 뇌 중앙의 기저핵 부위가 두꺼워져 있었다. 이곳은 최고 흥분감, 영어로 말하면 '하이(high)'를 느끼는 부위다. 쾌락 자극에 도파민 신경물질이 분비되는 장소이다.

즉 프로 게이머는 게임을 공부처럼 여기고 통제력을 갖고 훈련 대상으로 삼지만, 중독자는 같은 게임을 해도 맹목적인 쾌락 추구에 쏠려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프로 게이머는 정시 출퇴근이 가능하지만, 중독자는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게임에 매달린다. 둘 다 온종일 게임만 생각하지만, 프로 게이머에게 게임은 일이고, 중독자에게 게임은 그저 흥분 도구다. 그러니 게임 중독자가 프로 게이머가 된들 좋은 성적을 내기란 글렀다. 뭐든지 일이다 싶으면, 절제와 고달픔이 수반되는 법이다.

골프 퍼팅 하나를 넣고 못 넣고에 따라 어마어마한 돈이 갈리는 골프 대회나 골프 도박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뇌는 상금을 냉큼 따먹는 '하이' 상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골프를 잘 칠 수 있는지 공부하고 연구하는 대상피질 활성화 상태다. 판돈으로 '골프 횡재'를 추구하는 도박과는 다르다.

인간의 뇌에 중독성 쾌락 중추가 있다는 사실은 쥐의 행동 관찰을 통해 알게 됐다. 60여년 전의 실험이다. 쥐의 뇌에 전극을 심고 쥐가 스스로 스위치를 눌러 전극을 자극할 수 있도록 학습시켰다. 이후 뇌의 여러 부위에 전극을 옮겨 가며 심고, 쥐가 어떻게 다르게 행동하는지 봤다. 그러자 어느 한 특정 부위에 심긴 전극의 스위치를 쥐는 계속 눌러댔다. 굶겨서 허기진 상태를 만들고 먹이를 눈앞에 주어도 아랑곳없이 쥐는 계속해서 전기 자극만 눌렀다. 그 부위가 바로 뇌 중앙 부위에 있는 쾌락 중추다. 결국 실험 쥐는 끝없이 스위치를 누르다 굶어 죽게 된다. 생존의 본능마저 마비시키는 이 쾌락 중추가 인간의 뇌에도 있고, 이를 자극하는 것이 사람 세상에서는 인터넷 게임, 알코올, 마약, 도박 등 중독이다. 그만큼 중독은 무섭다. 중독은 한통속이어서, 게임 중독에서 겨우 벗어나면 알코올에 빠지기 쉽고, 도박 중독자가 마약에 손을 댄다. 애초에 빠졌던 중독의 쾌락을 다른 그 무엇이 대체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독 갈아타기를 하게 된다. 그만큼 중독은 강렬하고 끈질기다.

중독자들은 반가운 친구의 살가운 눈인사에 무심하고, 가슴을 치는 시 한 수에 애절함이 없다. 언뜻 바라본 가을 하늘의 청명함도, 보도블록 사이에 핀 꽃 한 송이도 그저 그렇고 그런 것들일 뿐이다. 그들은 오직 쾌락 중추만 자극되기 바라는 외롭고 닫힌 삶을 산다.

중독은 대개 일상에 대한 도피와 회피로 시작한다. 그런 면에서 완충이 얇고, 빈틈의 여유가 작은 우리나라는 중독을 유혹하는 사회다. 왜 많은 청소년이 게임에 빠지고, 많은 직장인이 알코올에 찌들겠는가. 획일주의 사회일수록 음주율이 높고 사회적 약자에게 중독이 많다. 저소득층 지역에 사행성 도박장이 들어서고, 그 주변에는 술집이 형성되고, 대부업체가 뒤따르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 과정에서 '주폭'이 생산되고, 폐인이 양산된다.

이제 중독을 생물학적으로 취약한 개인의 문제에서 공공의 문제로 봐야 한다. 피폐한 중독자가 범죄를 일으키고, 황폐한 중독자가 건전한 사회 분위기를 크게 휘저어 놓는다. 선진국들이 국가 차원에서 중독 예방·치료 통합 관리 제도를 두는 이유다. 우리 사회가 중독 사회가 되지 않도록 다 같이 각성 상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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