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촛불을 향한 뻔뻔함

이상호 사회부 차장 2013. 8. 15. 21:5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30년 3월12일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는 78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아슈람을 출발해 20여일 만에 단디 해변에 도착한다. 단디에 이르렀을 땐 간디의 뒤를 따르는 인도인이 수천명으로 불어났다. 간디는 주전자에 바닷물을 담아 끓인 뒤 한 줌의 소금을 들어 보였고 뒤따랐던 사람들은 일제히 같은 방법으로 소금을 만들었다. 대공황에 처한 영국이 소금을 비싼 가격에 팔아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것에 저항한 비폭력 불복종운동이다. 인도를 영국 식민지배에서 해방시키는 발판이 된 이 소금행진은 비폭력 저항운동의 상징으로 역사에 남아 있고, 미국의 흑인 해방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등을 규탄하는 촛불이 주말마다 서울광장을 메워가고 있다. 수백명으로 시작된 촛불집회 참가자는 2개월 만에 5만명으로 늘어났다. 촛불은 비단 서울광장뿐만 아니라 전국으로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희생과 염원을 상징하는 촛불을 들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불법행위의 진실을 밝히고 도둑맞은 민주주의를 되찾자는 것이다. 거기에는 지금보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80여년 전 영국의 폭압적인 지배에 맞서 나섰던 인도인들의 소금행진 같은 비폭력운동이 이 땅에서 또다시 재현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집권세력의 생각은 딴판이다. 새누리당 이완구 국회의원은 얼마 전 "촛불집회, 그분들은 지난 광우병 때도 했던 분들"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 요구는 무시해도 된다는 말로 들린다. 같은 당 홍문종 의원은 "삼류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거리집회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촛불 참가자들을 어리석은 무리로 깎아내렸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제1야당인 민주당의 촛불집회 참석을 빗대 "기말고사를 앞둔 학생이 길거리를 쏘다니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촛불 끄기에는 경찰도 가세하는 눈치다. 지난 주말 촛불 참가자를 주최 측이 추산한 인원의 3분의 1 수준인 1만6000명으로 발표했다. '김빼기'라는 비판이 일자 경찰은 뒤늦게 집회 인원 추산방식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일부 언론들의 촛불집회 폄훼도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대선불복운동으로 뒤집어씌우며 권력에 아부하려 애를 쓰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특히 정권에 기대 탄생한 일부 종합편성채널들의 보도행태는 단맛을 좇아 이리저리 모여드는 날파리떼와 꼭 닮은꼴이다.

국정원 사건을 두고 국민들이 갖는 실망감은 여론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 여론조사기관의 최근 조사를 보면 국정원 사건을 불법선거와 국기문란으로 보는 경우는 58.3%인 반면 새누리당처럼 '여직원 인권유린'으로 보는 경우는 27.4%에 불과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도 무관치 않다. 정치문제에 좀처럼 나서지 않았던 천주교 사제들의 잇단 시국선언도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는 헌법에 보장돼 있다. 촛불집회의 요구는 그런 의미에서 당연하다. 물론 국회에서 국정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싹을 보니 기대가 되지 않는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14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청문회 첫날부터 두 핵심 증인이 불출석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의 댓글작업을 사전에 인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실을 밝히는 데 소극적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진정 몰랐다면 박 대통령은 실체를 밝히고 국정원을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데 지금보단 적극적이어야 한다.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로 나라가 휘청거리는데 이를 모른 척하는 것은 직무유기이며, 이는 곧 공범이다. 진실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헌법 수호라는 측면에서 대통령의 주요 의무이기도 하다. 권력자들이 촛불집회를 지금처럼 무지한 일부 국민들의 불장난 정도로 호도하는 것은 영국이 제국주의 시절 간디를 '소금도둑'으로 불렀던 것보다 더한 뻔뻔함이다.

< 이상호 사회부 차장 >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