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의 사람그물] 왜 졸개를 못 만들어 안달인가

2013. 7. 2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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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학도호국단이 부활한 1975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한 반이 한 소대였고, 학년이 대대, 학교 전체는 한 연대로 불렸다. 말 그대로 병영학교였다. 빳빳한 군복에 군화를 신고 검은 안경을 쓴 예비역 대위가 지휘봉을 들고 교련선생님이란 이름 아래 학생들을 통제했다. 총검술 16개 동작을 제대로 못한다고 매타작을 일삼고, 총기 분해와 조립이 느리다고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선착순을 시켰다. 병영학교답게 교련 시간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일사불란한 수업과 생활지도를 위해서 선생님들은 걸핏하면 때렸고 학생은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졸개였다. 내가 다닌 학교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영화를 보면서 나중에 알았다. 그런 개 취급을 당하면서 왜 항변 한번 제대로 못했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그때마다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아득하다.

사설 해병대 캠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등학생들의 비보를 오열하듯 읽었다. 진짜 캠프냐 사칭 캠프냐의 문제를 대책이랍시고 논의하는 작태는 한심스럽다. 해병대 캠프 등에 학생들을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군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며 반발하는 건 또 뭔가. 말이야 바른말이지. 적군 섬멸이 최종 목적인 특수부대의 훈련 과정에 나이 어린 학생들을 몰아넣고 뭔가 긍정적인 걸 얻을 수 있다고 믿는 행위 자체가 엽기다.

며칠 동안의 병영체험을 통해서 극기심, 협동심, 리더십, 도전정신이 함양된다면 세계는 진작에 병영국가를 지향했을 것이다. 복무기간이 10년이라는 북한의 국가경쟁력은 세계 최고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어 보일지 몰라도 내면화는 어림없다. 그게 사람이다.

군대조직의 핵심 운영 원리는 복종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무조건적인 순응, 시쳇말로 까라면 까는 것이다. 지난해 경기도에서만 2만여명의 중고생이 해병대 캠프 등을 체험했다. 요즘은 교사들에게까지 수업 대신 병영체험 활동을 강제하고 있다. 완전한 병영학교로의 회귀다.

이번 사고로 아이를 잃은 한 학부모는 '학생들을 극기훈련으로 몰아넣는 것은 한국 사회 특유의 군사문화에서 비롯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다'라고 절규했다. 백번 공감한다. 이 땅의 교육당국, 학교, 학부모들은 허상에 휘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1920년대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는 환자 수천명의 이를 몽땅 뽑는 정신과 치료를 실시했다. 정신병이 근본적으로 치아 감염으로부터 온다고 믿어서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지만 대기환자가 줄을 이었고 정부는 예산을 지원했으며 언론은 열광했다. 결국 추악하고 잔혹한 정신의학사로 귀결됐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것이 최선의 치료법이라고 믿었다.

2005년 법무부는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청소년 1000여명에 대해 극기훈련의 일환으로 병영체험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던 적이 있다. 허울은 좋다. 인간의 정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은 그런 정도다. 집단적으로 통제하기 좋은 쪽으로만 작동한다. 군부대 훈련을 통해서 정신을 개조하겠다는 삼청교육대의 발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청소년에게 극기훈련이나 리더십 함양을 빌미로 삼아 군사문화를 강요하는 체험활동은 아무 득이 안 된다. 이론적으로도 실전적으로도 검증된 바 없다. 말 잘 듣는 아이들을 기대하는 기성세대의 얄팍한 기대이거나 인간의 마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자들의 헛된 망상일 따름이다. 즉시 중지시켜야 한다.

누가 내게 다시 그때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간단하다. 안 간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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