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사회적 시민'을 주목하라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2013. 7. 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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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간 우리는 3개 대륙을 휩쓰는 대규모 시위의 불길을 목도했다. 불가리아, 터키, 브라질, 이집트, 보스니아 등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정부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했다. 어제 경향신문은 이를 "더 나은 삶을 요구하는 글로벌 중산층의 반란"이라는 제목으로 1면에서 다루었고, 지난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이 시위의 불길을 1848년, 1968년, 1989년의 지구적 반란과 비교하는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대규모 군중 시위는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현재 시위에는 분명히 과거와 다른 무언가가 있다. 종래에 폭발적인 대중 반란은 그 원인이 지독한 경제적 궁핍 혹은 독재 정권의 폭압인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의 시위들은 대부분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권 아래에서 일어났으며 또 거리에 나온 시민들의 대다수는 경제적 하층 계급이라고 보기 힘든 이들이다.

따라서 노조나 정당과 같은 기존의 조직 단위들과는 무관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또 이들의 요구와 의제를 몇 가지로 간추려내기도 어렵다. 이렇게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모두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대규모의 성난 군중들이 연일 거리와 광장을 메운다는 패턴의 시위는 이미 몇 년 전 스페인과 뉴욕에서도 나타난 바 있으며, 2008년 한국의 촛불 시위 또한 이 패턴을 보여준 초기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새로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사회적 시민의 성장과 대두"라는 열쇳말을 제안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시민'이란 부르주아 계급의 정치적·경제적 성장 과정에만 국한해 쓰여온 감이 있고, 그래서 사실상 '개인적 시민' 즉 개인의 정치적·경제적 권리의 주장에만 민감한 이들을 뜻하는 말이 되어온 감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본래 '시민'은 자신의 자유로운 삶과 타인의 자유로운 삶이 모두 가능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도 공동체(commune)의 자유로운 삶을 구성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즉, 나의 행복과 불행이 같은 사회 내에 살아가는 다른 이들의 행복 및 불행과 불가분으로 엮여 있다는 것을 인식한 위에서 모두가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 전체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주체로서 참여하는 '사회적 시민'이 그 본래의 면모라는 것이다.

몇 백년간 거의 망각되어 왔던 이러한 '사회적 시민'의 존재가 21세기 지구촌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렇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도 지난 몇 십년간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정치경제 체제를 들어야 한다. 산업 사회의 집단적 활동을 모두 자본 시장의 명령에 따라 조직할 것이며, 국가가 할 일은 그저 이러한 체제가 고장을 일으키거나 과도한 사회적 갈등을 낳을 때 정도에나 개입하여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라는 게 이 체제의 핵심이었다.

그 결과 나타난 가장 치명적인 사태는 사회의 해체와 파괴이다. 우리 삶의 만사만물은 수익성이라는 잣대 하나만으로 재단되고 재편됐으며 그 와중에서 사람들이 타인들과 어우러져 삶을 펼쳐내는 장인 '사회'는 사실상 쓰레기장처럼 방치되고 말았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재건해 다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장을 재구성하는 임무를 방기하고 그저 이 쓰레기장의 순시와 감찰 정도에 그칠 뿐이다. 지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절망과 허무와 냉소뿐이다.

하지만 절망과 냉소만큼 쉬이 권태스러워지는 일도 없다. 이제 지구 곳곳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시민'의 능동성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몇 가지 요구나 독재자 물러가라는 정도의 요구가 아니다. 자신들의 삶을 되찾고자 하는 이들은 당차게도 '사회의 재구성'이라는 포괄적인 요구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가축우리처럼 '관리'하려 드는 기존의 정치 구조에 대해 총체적인 불신과 거부를 표명하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서고 있는 '사회적 시민'을 주목하라. 이 흐름을 이해하지도, 동감하지도 못하는 이들은 정치·경제·사회 어디에서나 금세 뒤처지게 될 것이다.

<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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