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발] 안보 여론몰이의 한계 / 박창식

2013. 7. 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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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독일 나치스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남긴 말들이다. 히틀러와 괴벨스는 국민 여론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괴벨스는 선전 수단으로 라디오에 주목했다. 그는 국가 보조금을 풀어 노동자들의 일주일분 급여인 35마르크만 있으면 라디오를 살 수 있도록 했다. 독일인들은 라디오를 '괴벨스의 입'이라고 불렀다. 그는 매일 저녁 7시 라디오 뉴스에 '오늘의 목소리'라는 코너를 만들어 총리 관저 르포를 하도록 했다. 나치스 지지 군중대회 실황도 전국에 생중계했다.

괴벨스는 하켄크로이츠와 제복, 웅장한 행사 등을 활용해 대중이 최면상태에서 파시즘에 젖어들도록 몰아갔다. 나치스 당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괴벨스는 대중을 사로잡는 연설로 유명했다. 괴벨스가 펼친 정치 연출의 핵심은 한마디로 "이성은 필요 없다. 대중의 감정과 본능을 자극하라"는 것이었다.

10·4 정상회담 대화록 무단 공개 사건의 파장이 길어지고 있다. 대화록 공개 행위의 불법·부당성은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 주목할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엔엘엘)을 포기했다'는 거짓 주장이, 괴벨스의 정치선전을 빼닮았다는 점이다. 그 주장은 무엇보다 사실이 무엇인지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자극하고, 영토 아닌 영토 논란을 일으켜 대중을 감정적으로 격동시키려 한 게 전부였다. 보수 언론이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대변한 점도 괴벨스 시절과 비슷했다.

'안보 여론몰이'는 한국 권위주의의 오래된 정치문법 중 하나다. 박정희 시대로부터 1980년대까지는 '좌경 용공' 몰아붙이기가 성행했다. 근래 들어선 '종북 좌파' 찍어내기가 주된 흐름이다. 과거에 북한의 위협과 공포를 부각시키는 데 주안점을 뒀다면, 요즘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보다는 경제난이 부각되면서 북한을 '찌질한 존재'로 멸시해버리는 새로운 프레임이 떠오르고 있다. 어느 경우든 공격 대상 정치세력과 북한을 한 묶음으로 만들어 고립시키려는 그릇된 선동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 권위주의 세력이 볼 때 좀 뜻밖의 방향으로 여론이 흘러갔다. 한국갤럽의 지난달 28일치 여론조사를 보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담긴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엔엘엘 포기가 아니다'라는 의견이 '엔엘엘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이라는 의견보다 갑절 이상 많았다. 국정원의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행위는 '잘못한 일'이라는 응답이 우세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덩달아 떨어졌다.

우리 정치에서 안보 여론몰이가 먹히지 않게 된 것은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있다는 지표다. 이런 현상이 처음도 아니다. 2010년 지방선거 국면에서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갖고 여론몰이를 펼쳤지만, 바닥 민심이 정반대로 조성되고 여당이 참패한 적이 있다.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은 "국민의 일부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속일 수는 있다. 국민의 전부를 일시적으로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의 전부를 끝까지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여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괴벨스의 믿음이 아니라, 여론 앞에 겸허해야 한다는 링컨의 말이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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