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개입이 아니라 총체적 공작입디다

2013. 7. 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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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⑬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은 외국 방문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불같이 화를 내곤 했습니다. 정상외교에 혼신을 쏟았는데, 기다리는 건 변함없는 정쟁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노태우 대통령은 심했습니다. 정쟁은 물론 허구한 날 민자당 계파싸움이었으니까요. 아마 지금 님의 속도 편치 않을 겁니다. 나라 안은 여전히 북새통이니 말입니다. 게다가 촛불은 자꾸만 늘고….

화낼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와 가정 그리고 나라를 반듯하게 지키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외국에서 받은 박수로는 꼬인 국정을 풀 수 없습니다. 사실 외국에서 환대받기는 쉽습니다. 쇠고기 시장 다 내준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받았던 극상의 대접을 생각해보면 됩니다. 사실 걱정은 남북 정상 사이의 속 깊은 이야기까지 모두 까발리고 중국에 갔으니, 혹시 회담 중에 면박이나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선 서로 나눌 속엣이야기가 참으로 많았을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엉망으로 만든 한-중 관계를 풀려면 중국이 그동안 서운해했던 것을 모두 풀어내도록 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을 보는 눈이 탐탁지 않은 게 중국입니다. 돈은 중국에서 벌어 가면서, 중국의 심장을 겨누는 전초기지를 미국에 제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시진핑 주석도 이런 입장에서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기 원했을 겁니다. 그러나 여차하면 밀담이 공개돼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돌아왔으니 미뤄둔 집안 정리에 팔을 걷어붙여야 합니다. 외국 순방만 하며 임기를 끝낼 순 없습니다. 알다시피 가장 큰 골칫거리는 국정원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내용을 대충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비서관 정문헌씨가 남북 정상의 대화록을 갖고 장난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였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2인자라는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는 데 그만큼 좋은 무기가 없다고 간주해 법이고 상식이고 원칙이고 상관하지 않았던 것이죠. 이 대통령은 이미 이 대화록을 두 번씩이나 봤다고 했으니 통일비서관이 모를 리 없었겠죠. 그러나 그 내용을 국정감사에서 공개할 땐 청와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앙숙으로만 여겼던 이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 사이의 선거 공조는 사실 그때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것도 불법적으로 말이죠. 왜 불법이냐고요? 그 약삭빠른 원세훈 국정원장도 대화록 내용만 흘릴 뿐 전문 공개는 끝까지 거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새누리당 선거대책본부가 지난해 대선 당시 이미 대화록 전문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권영세 선대본 상황실장은 12월10일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이 대화록을 이용한 비상계획의 일단을 말했습니다. 집권하면 공개하겠다는 검토사항까지 내비쳤습니다. 김무성 본부장은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최근 당 회의에서 대화록 전문을 봤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카더라' 식의 방법으로는 문 후보를 종북으로 낙인찍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잽 구실만 했지 결정적인 한 방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2월11일 국정원 직원의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박 후보의 우세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판세가 혼전으로 빠질 때였습니다. 새누리당으로선 비상한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12월14일은 마지막 주말 유세였습니다. 그날 승부처로 간주되던 부산에서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가 유세 대결을 벌였습니다. 문제의 김무성 본부장은 지원 연설에서 대화록 원문이라며 엔엘엘(NLL) 관련 부분을 읽었습니다. 지난 6월24일 국정원이 공개한 것과 토씨까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에 대화록의 직접 공개를 요구하다가 원세훈 원장이 이를 거부하자, 김 본부장이 유세장에서 내용 중 일부를 아예 읽어버린 겁니다. 이 문제는 투표일 이틀 전 국정원장이 발췌록을 검찰에 제출하는 형식으로 절충됐습니다. 결국 고위급에선 대화록의 활용을 놓고 공작이 벌어졌고, 낮은 차원에선 국정원 요원들이 여론 조작에 나서는 방식으로 이중의 선거공작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반전의 추세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공작이 진행됩니다. 국정원 선거 개입을 방어가 아니라 역공의 계기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박 후보는 13일 젊은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을 규탄하며 "정보기관마저 정쟁의 도구로 만들려고 했다면 좌시할 수 없고 … 모략으로 밝혀지면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발언은 그 뒤 모든 유세와 토론에서 반복됐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는 듯 증거도 인멸하고, 수사 결과도 조작했습니다.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박 후보가 죽을 쑨 마지막 토론이 끝난 한밤중, 수사 결과를 조작해 만든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보냈습니다. 이 사실은 이 정부의 검찰이 밝혀낸 것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막가파식 선거공작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중심에 누가 있었느냐는 겁니다. 그건 김무성 본부장도, 권영세 실장도, 원세훈 국정원장도, 김용판 서울경찰청장도 아닐 겁니다.

지난 6월24일이었습니다. 얼굴 없는 익명의 측근을 통해 '나는 모르는 일' 혹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만 하던 님이 갑자기 "대선 때 국정원이 어떤 도움을 주지도,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여야가 제기한 국정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 국민 앞에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날 오후 남재준 국정원장은 돌연 대화록 전문을 국회에 공개합니다. 전날 그 익명의 측근은 '대화록 전문을 공개해도 일주일만 지나면 금방 잠잠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정도면 그 중심에 누가 있는지 윤곽을 그릴 수도 있을 겁니다. 솔직히 말해 그동안 야당도 국민도 순진했습니다. 아무도 이 사건의 중심에 님을 둘 생각도 못했습니다. 정직과 신뢰가 생명이라는 님이 설마 그 더러운 공작에 손을 댔을 리가…. 저부터 이명박 정권이 저 살기 위해 님에게 한 아름 바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중국에서 좋은 말씀 많이 하셨더군요. 그런데 그건 남이 아니라 님에게 돌려드려야겠습니다. "처음엔 말을 듣고 행실을 믿었지만, 이젠 말을 들어도 행실을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담백하지 않으면 제 뜻을 밝히 드러낼 수 없습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시사게이트#2]"박근혜 대통령님, 당황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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