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 시각] 노무현이 본 것, 박근혜가 보는 것 / 김보근

2013. 6. 3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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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중국 칭화대 학생들이 비웃지나 않았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29일 칭화대 연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중국을 국빈방문 중이던 박 대통령은 학생들에게 '신뢰 외교'와 '새로운 한반도'를 강조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연설은 한국 대통령들이 해외에서 한 연설 가운데 가장 공허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국정원의 쿠데타적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여파가 큰 탓일 것이다.

중국의 명문 칭화대 학생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어 최근 남한에서 벌어진 일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또한 박 대통령의 연설과 남한 내의 '국가기밀 누설 사태' 사이에서 깊은 괴리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칭화대 학생들이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을 찬찬히 봤다면 '새로운 한반도'를 얘기할 수 있는 주인은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대화록은 노 대통령이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김정일 위원장을 민족화해의 길로 한발짝 더 움직이게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여준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를 나타낸 뒤, 진짜 핵심인 '평화 정착, 경협 확대, 통일과 화해'로 나아갈 구체적인 방안들을 길게 역설한다.

대화의 진전을 위한 이런 어법에 대해 정문헌·서상기 새누리당 의원 등 독해력이 문맹 수준에 가까운 부류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는 것"을 예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으로서는 그런 파렴치한 공격에 대한 우려보다, 그가 '미리 본 새 한반도'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이 컸을 것이다. 그 비전은 칭화대 학생들이 체감하는 현재 중국-대만 관계와 비슷한 것일 수 있다. 양안 사이에선 지난해에만 약 800만명이 서로 방문했고, 지금까지 34만쌍 가까운 두 나라 남녀들이 결혼했다. 경제관계는 이미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긴밀히 결합돼 있다.

사실 박 대통령도 2002년 5월 한국미래연합 대표 자격으로 김정일 위원장과 만난 뒤 6·25 실종군인 생사 확인,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등에 합의했다. 그때 많은 이들이 박 대통령도 '새로운 한반도'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국정원 리크스'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박 대통령이 보고 있는 것은 '새 한반도'가 아니라 오직 '여론 쟁취'와 '선거 승리'뿐이라고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2002년에는 김 위원장과 합의를 이루는 게 그해 대선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2013년에는 국정원의 뒤에서 국가기밀 폭로를 방관하거나 지시하는 것이 다음 선거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그를 움직이는 가장 큰 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신뢰 프로세스'에도 '신뢰'는 없고 그저 '시늉'만 존재한다. 노 대통령이 보여줬던 '새 한반도'에 대한 열정도,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한 극단적인 남북관계 단절도 표를 얻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듯하다. 그 열정과 단절 사이에서 대화의 시늉만 하면서 여론 동향을 주시한다. 그리고 여론이 불리해지면 국익도 서슴 없이 내팽개친다.

하지만 '시늉 프로세스'가 끝까지 성공할지는 의문이다. 민초들은 정치공작이라는 바람이 불면 먼저 눕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보면 열정과 비전이라는 햇살 쪽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박 대통령의 강연을 들은 칭화대 학생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간 박 대통령이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북한과의 실제적 대화 등, '시늉 프로세스'가 아닌 '신뢰 프로세스'를 보여줄 때에야 학생들도 비로소 박 대통령을 '새로운 한반도를 거론할 만한 지도자'로 다시 생각할 것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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