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독일에는 없는 '독일식' 철도

2013. 6. 6.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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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3일 오후 비상사태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 가좌역으로 향했다. 사고 현장은 흉물이었다. KTX 선로의 지반이 무너져 땅 밑으로 엄청난 구멍이 뚫렸고 선로는 녹은 엿가락처럼 휘어져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바로 몇 분 전 행신으로 가는 KTX가 통과했다지…. 만일 저 붕괴 사고가 단 몇 분만 일찍 일어났다면?' 모골이 송연했다. 대형 사고를 피한 것은 우리가 노력해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하늘이 도운 결과였다.

원인을 살펴보니 철도공사 직원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철도시설공단의 발주를 받은 업체가 안전을 도외시하고 공사를 강행한 결과였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철도공사의 현장 직원들이 철도시설공단 측에 주의를 촉구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철도시설공단 측은 공사 업체에 알렸다고 했지만 사고를 예방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후에도 유사한 사고가 몇 건이나 계속 일어났다. 이런 사고는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주된 업무인 철도에서 기반 공사와 자산 관리 업무를 떼어서 철도시설공단을 만들었고, 심지어 최근에 알려진 것처럼 철도시설공단이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면 본(本)과 말(末)이 거꾸로 되는 꼴이니 안전을 생명으로 하는 철도를 잘 운영하는 일이나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이미 포기한 셈이다. 교육이 주된 목표인 학교에서 교직이 아니라 관리직이 중심이 되는 경우에 그 학교 교육이 과연 발전할 수 있을까?

최근 정부는 중장기 철도 산업 정책 방향의 기본 골격을 제시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다가 포기한 KTX 민영화의 변형을 "경쟁이 곧 효율화"라는 논리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내는 우선 알짜배기 수서발 KTX부터 민간 자본과 연기금 등을 참여시켜 민영화의 물꼬를 트겠다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정부는 이를 두고 "독일식"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독일에는 그런 구조가 없다. 우선 우리 철도가 운영은 철도공사가 담당하고 기반 공사와 관리는 철도시설공단이 담당하는 상하 분리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데 반해 독일은 통합 방식이다. 또 주요 간선 철도에서 여러 회사가 '경쟁'하는 경우도 없다. 이것은 고속버스 등과 달리 한 노선 위에서 여러 회사가 경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철도의 통합적 특성 때문이다. 경쟁보다는 지역 독점과 같은 다른 형태의 독점이 철도 산업의 특성이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든지 거의 같은 상황이며 독일도 마찬가지이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는 공기업인 지주회사 DB가 운영 자회사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알짜배기 자회사의 주식 매수에 민간 자본이 참여하는 그런 구조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수많은 자회사를, 통합된 DB의 정책에 따라 마치 거대한 한 회사 속 부서와 같이 지역별·노선별로 여러 서비스를 특화함으로써 간선 철도가 다하지 못하는 영역을 보완해주고 있을 뿐이다.

철도는 통합된 시스템에 따라 운행된다. 기반 시설과 차량, 동력과 전기 신호, 운전과 선로 관리, 승객 서비스와 안전 관리, 다른 노선 연계와 환승 등 수많은 요소가 통합되어 최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 산업이다. 이제 상하를 나누고 자회사를 나누고 자본도 나누어 가지고 관제 업무도 가져가고 선로 배분권도 회수하는, 이러한 찢어 나누는 식의 정책 방향을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하기를 바란다. 나누더라도 통합성을 높이는 특화로 가야 한다. 효율도 높여야 하지만 공공성 안에서 고려해야 한다. 경쟁도 좋지만 유기적 결합 안에서라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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