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모든 권력에 칼과 꽃으로 저항하자 / 이도흠
[한겨레] 갑의 을에 대한 횡포가 항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롯데백화점과 라면상무에서 남양유업으로 이어지더니 윤창중 사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비정규직과 해고노동자가 겪는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쌍용자동차와 현대자동차를 비롯하여 지금 전국 곳곳에서 해고노동자들이 서 있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남은 모든 힘을 다하여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갑인 사쪽과 이들과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 정권과 검찰, 보수언론과 대형교회, 어용학자들은 미동조차 없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 권력이 있고, 권력이 형성되면 한쪽은 갑, 다른 한쪽은 자연스레 을이 된다. 사회적 위상이나 지위, 자본의 유무만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나이나 젠더, 학식에서부터 성격과 외모, 기(氣)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만든다. 술자리에서 학번을 물은 뒤 앞선 자가 으스대고, 접촉사고가 난 뒤 상대방 운전자가 여성이면 목소리가 커진다.
필자를 오랫동안 곤혹스럽게 한 것은 밀그램 실험과 '루시퍼 효과'라는 용어를 낳은 스탠퍼드 감옥 실험, 그리고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이다. 밀그램 실험에서 4달러를 받고 교사 역을 맡은 이들은 학생 역을 맡은 이들이 단어를 맞히지 못하면 15볼트씩 전압을 올리며 전기충격을 가하였다. 올릴 때마다 학생들이 절규를 하고 고통스럽게 울부짖는데도, 450볼트까지 올리면 피실험자가 죽는 사실을 알고서도, 65%의 사람들이 450볼트까지 전기충격을 가하였다. 필립 짐바도 박사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 또한 대동소이하다. 교도관 역의 학생들은 죄수 역의 학생들을 심하게 고문하고 폭력을 가하였다.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법정으로 달려가서 유대인 대학살의 집행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옆집의 아저씨였다.
그럼 우리 모두에게 아이히만과 루시퍼와 악마가 깃들어 있는 것인가. 이들 실험 결과와 논리는 평범한 인간에게도 악마가 깃들어 있고, 그가 갑의 권력을 갖기만 하면 어디서든 이를 구현하리라는 생각을 낳았다. 하지만 더 공부해보니 아니었다. 밀그램 실험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권위에 저항하는 사례를 보면, 타자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여지만 주면, 사람들은 450볼트까지 올리거나 죄수에게 가혹행위를 하는 일에 저항한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을 보고 있다. 1967년 10월21일 주 방위군이 동원되어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시위대에 총구를 겨누자 한 청년이 군인들 앞으로 걸어 나와 분홍빛 카네이션을 총구에 꽂았다. 버니 보스턴(Bernie Boston)은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고 그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후 '꽃의 힘'(flower-power)은 68혁명의 구호와 지향점이 되었다. 이는 '폭력을 통한 지배와 억압, 강제로서 권력'을 지양하고 '평화와 아름다움의 공존을 이루는 힘'으로 '변증법적 종합'을 이루었다. 그렇게 그들은 총을 녹여버리고 평화와 예술, 저항과 연대로 어우러진 새로운 힘을 만들었고, 이는 세상을 바꾸었다.
푸코의 말대로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아니, 저항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갑은 배제와 폭력을 행사한다. 갑이 폭력을 양산하는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을은 비극을 벗어나지 못한다. 힘이 없는 을들은 모여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눈부처-주체'가 되어 연대를 하자. 칼로, 꽃으로 갑에 저항을 하자. 그것이 바로 갑에게도 그 마음속 선의 꽃밭에 물을 주는 일이며, 타락한 이 세상을 생명과 평화와 정의의 꽃들이 흐드러진 꽃밭으로 전환하는 길이다.
이도흠 한양대 교수·민교협 상임의장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노무현 전 대통령 미공개 사진 7장 추가 공개■ '일베' 중독된 회원 만나보니…"'김치X'라고 쓰면 기분이 풀린다"■ "홍어 택배라니요?"…일베 언어 테러에 518 유족 피멍■ 전두환에 맞서다 숨진 김오랑 소령 가족 "보상커녕 불이익 걱정"■ 국제중이 뭐길래…12살 영태의 대입 뺨치는 입시전쟁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