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곽금주] 악플의 군중심리

2013. 5. 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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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동조해주는 것은 무한한 즐거움을 준다. 자신감이 생기고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상의 가상공간을 삶의 일부분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이 공간에서 친구들, 동료들 또는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기도 한다. 이 새로운 매개체로 인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지고, 보다 많은 정보를 얻게 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아이디어와 메시지가 단 몇 초 안에 전 세계로 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인터넷의 소통은 늘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드러나지 않고 당장 상대가 눈에 없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상대를 비난하고 공격할 수 있다. 내면 깊이 존재하는 동물의 본성을 인터넷상에서 과감히 드러내기도 하면서 여론몰이를 하게 된다. 근거 없는 사실이 아닌 정보에 네티즌들은 격분하기도 한다. 일종의 온라인 군중 심리다.

이는 수없이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음까지 몰고 간 중세 마녀사냥과도 유사하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단자들을 색출, 제거하는 목적으로 1230년 무렵부터 종교재판을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마녀사냥은 1600년대까지 유럽에 퍼져나갔는데 마녀로 의심받은 몇 만 명의 사람들이 처형당했다.

마녀사냥이 한창 유럽을 휩쓸고 간 후 1690년대에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다시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다. 살렘이라는 마을에서 근거 없는 한 사람의 말 한마디로 많은 여성들이 마녀로 의심 당하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심지어 당시의 지사였던 필립스(Philips)의 아내마저 마녀로 고발되었다.

결국 필립스는 더 이상의 체포를 금지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한 후였다. 살렘마을에서의 마녀사냥은, 근거 없는 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 어떻게 마을 전체가 동조하고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었는가를 보여준다. 이렇게 인간이 무리를 이루면 보이지 않는 압력이 생기면서 이성은 사라지게 된다.

바로 이와 유사한 군중심리가 현재 우리 인터넷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초등학생들까지 가담해서 악플을 달고, 성인들조차 이런 초등학생의 글을 제대로 파악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퍼 나르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상에서는 오프라인과 비교해 볼 때 더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모이게 된다. 그러면서 임계유량의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잘못된 판단은 멈출 수가 없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면서 확산되게 된다. 임계 유량이란 원자핵을 중성자와 충돌시켜 분열시킨 뒤 다시 생성된 중성자로 핵분열 연쇄반응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 질량을 말한다.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대학의 과학자 크리스 러스는 바로 이와 같은 현상이 인터넷상에서 일어 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계속적인 핵연쇄 반응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영향을 주면서 의견이 파급된다. 파급이 진행될수록 자신이 무슨 행위를 하는지 판단이 안 된다. 문제는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도 쉽게 파급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인터넷에서의 마녀 사냥이다. 중세 마녀사냥의 열기가 우리 인터넷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오늘 내가 달고 있는 리플이 잘못된 판단은 아닌지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무심코 달고 있는 악플 때문에 누군가 희생되고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그 나비효과를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 악플들이 언젠가는 나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사이버상에서 끔찍하게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가득하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점철되는 사회에서 우리가 살게 된다면, 그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곽금주(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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