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칼럼/1월 10일] 김지하, 황석영

2013. 1. 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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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횃불이던 그들이 뱉는 배타와 분열의 언행우리사회에 늘 아쉬운 존경받는 원로지식인 존재

김지하의 담시 <오적>을 읽은 건 고등학생 1학년 때였다. <사상계> 합본판이 집에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부정한 지배층을 작신작신 조져대는 문장이 자못 아슬아슬하면서도 통쾌하기 그지 없었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80년대 초 최루탄 냄새 매캐한 캠퍼스에서 데모가(歌)로 처음 접했다. '민주주의여 만세!' 후렴에선 매번 전율이 일었다. 이후 어떤 운동가요에서도 그만큼의 감동은 느껴보지 못했다. 김지하는 그 시대를 청년기에 겪어낸 이들에겐 실로 전설이었다.

황석영도 못지 않았다. 그의 이름과 <객지>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등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지식인인양 폼 잡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론 특히 장쾌한 묘사와 웅장한 서사가 압권인 <장산곶매> 도입부를, 대학생 이수정이 쓴 '서울대 4ㆍ19 선언문'과 함께 최고의 명문으로 꼽는다. 그들과 동시대를 호흡한 사실은 마땅히 감사할 일이었다. 그런데, 변했다.

김지하에 대한 세간의 평판이 바뀐 건 대학생 분신이 잇따르던 91년 봄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 치워라'는 글이 계기가 됐다. 사실 진보진영의 매도처럼 변절로만 볼 건 아니었다. 생명마저 정치적 목적달성의 도구로 삼는 학생운동가들의 교조성에 대한 질타는 그의 생명사상에 부합하는 것이자, 민주화투쟁의 정신과도 모순되는 게 아니었다.

정작 그를 전처럼 보기 어렵게 된 건 MB정권 들어서였다. 확실히 편협하고 배타적인 정파성이 두드러져 보이기 시작했다. 좌충우돌하던 언행에서 무엇보다 끔찍스러웠던 것은 정제하지 않고 내뱉는 막말이었다. 공론장에 내뱉는 '한마디로 X 같아서…' 따위의 쌍욕은 더 이상 시인의 언어는 아니었다.

그가 엊그제도 이념ㆍ진영을 칼같이 가르면서 '빨갱이' '깡통' 따위 막말로 또 구설에 올랐다. 좋게 보면 막힘과 걸림이 없는 자유인일 것이다. 그러나 같은 말이라도 예전 <오적>의 호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도리어 노년의 편벽, 안하무인이 느껴져 안타까웠다.

어쨌든 김지하가 단순하고 직선적이되, 황석영은 훨씬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그도 한때 변절 비판을 받았다. 2007년 이명박 후보에게 "역사를 퇴행시키는 반민주수구냉전세력"이라고 극언했다가 2년 뒤 돌연 그를 중도실용주의자로 재평가하고 해외순방에 동행한 기막힌 반전 때문이었다. 결국 더욱 매몰찬 MB비판자로 다시 돌아섰다. 당시 대선에서 손학규 탈당을 비롯, 직접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는 이번에도 '국민연대'를 구성,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깊숙이 개입했다.

나름의 진정성을 이해해도 역시 문제되는 건 경박한 언행이다. "정권교체 안 되면 이민이나 가겠다"며 절반의 국민에 강퍅한 배타성을 드러냈던 그가 엊그제는 야권에 "이념, 진영논리에서 벗어나라"고 주문했다. 광주에선 "박근혜 정부 1년이면… 국민적 저항이 생겨날 것"이라고 예단하고, 전국 최고투표율과 문 지지율을 들어 "한국의 민주화 중심이 호남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칭송했다. 도무지 의중을 종잡기 어렵다. 김지하가 유아독존의 초야도인 이미지라면, 황석영에게선 시류와 대중적 관심에 셈 빠른 정치꾼 느낌이 묻어난다.

많은 이들이 존경할만한 원로가 없음을 개탄한다. 시대정신을 이끌고, 민중의 아픔을 보듬으며, 화합과 소통의 공동체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이 원로지식인의 책무일 것이다. 아집과 독선, 세속의 명리에 취해 도리어 세상을 헝클어선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다. 원로 부재는 조금만 뜻이 맞지 않으면 어떻게든 상처를 입히려 드는 세태 탓이지만, 언행을 무겁게 여기지 않는 당사자들의 책임도 작지는 않다.

연배 인물들 중에서 유독 두 사람을 거론하는 건 다름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문학을 넘어 청년기 우리들의 삶을 키운 진정한 시대의 거목들인 때문이다. 요즘 그들의 노년은 그래서 더 서글프다. 젊은 시절 그토록 가슴을 뛰게 했던 옛사랑이 나이 들어 누추해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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