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아의 여론 女論] 토론할 줄 아는 여자사람, 나혜석

중앙일보 기자 2012. 12. 1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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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한국의 제1세대 신여성의 대표 인물 나혜석(羅蕙錫)은 진명여보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학식, 재능, 미모를 다 갖춘 여성이었다. 그녀는 다른 여성들보다 선각(先覺)한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이 단순히 남성의 '완롱물'이 되는 것에 반대하고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사람'임을 주장하고 실천하려 노력했다.

 1916년 유학 시절 학우회 송년회에 참석한 나혜석은 우연히 남학생들이 격렬히 토론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이를 한구석에서 구경하던 여학생들은 "아이구, 무슨 싸움터 같소그려. 학식이 있고, 지각 났다는 자의 태도가 이렇게 점잖지 못하오그려!" 하며 남학생들의 토론을 비웃었다. 그러나 나혜석은 이러한 여성들의 소극적 태도에 반대했다.

 그녀는 '빙긋 웃는 것이 여자의 미점(美點)'이라 하고 '말 아니하고 생각 없는 자를 여자답다' 하는 통념을 혁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과 같이 사람다운 여자가 되고 남의 일을 나도 판단할 줄 알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할 줄 알며, 더러운 것을 더럽다 할 줄 알거든-생각도 좀 해 본 것 같고, 할 말도 다 해 본 듯하거든-그때야말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해지는 것이라 믿었다(나혜석, '잡감', 학지광, 1917년 3월).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잘난 여자'를 쉽게 용납하지 못했다. '여자는 인형이 아니다' '모성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다' '정조는 취미다'라고 외치며 남성들과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나혜석을 사회는 비난하고 매장시켰다.

 지난주 첫 대선 후보 TV토론이 있었다. 유례없이 많은 대통령 후보가 여성인지라 토론도 여성들이 주도를 하는 형국이었다. 이를 보며 낯설거나 불편해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 역시 나혜석을 백안시하던 1920~30년대의 사고방식을 못 벗어난 것은 아닐까.

 "오늘이야말로 산 것 같소. 조선에도 저렇게 활기 있는 어른들이 많이 계신 것이 참 기쁘지 않소? 학식이 있기에 판단이 민첩하고 지각이 났기에 똑똑히 발표하는 것이오. 조선 사람은 점잔 부리다가 때가 다 지난 것을 생각지 못하시오?(…)비난이 없으면 반성이 어찌 생기고 타격하는 이가 없으면 혁신의 기운이 어찌 일겠소? 비난 중에서 진보가 되고 타격 중에서 개량이 생기는 것이 분명하고 이로 말미암아 개인이 사람 같은 사람이 되고 일국의 문명이 있는 것을 압니다."

 오늘 밤 있게 될 두 번째 토론을 보면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위와 같은 나혜석의 말을 떠올려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center/v2010/power_reporter.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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