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11월 17일] '애니팡' 인기가 말하는 것

정성은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2. 11. 17.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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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갑돌이와 당대의 미녀 배우가 난파 후 함께 무인도에 당도해 살아남았다. 움막 짓고 먹을 것을 구하느라 정신 없이 며칠을 보내다 어느 날 밤 둘은 사랑을 나누었다. 이튿날 아침, 갑돌이는 그 미녀 배우를 깨워 자신의 소원 하나를 간청했다. 1분 동안만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을돌인 척 해달라는 것이었다. 미녀가 승낙하자마자, 갑돌이는 미녀 배우에게 소리 질렀다, "을돌아, 어제 밤에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너 드라마에 나온 그 배우 알지? 그 배우랑 밤을 같이 보냈어. 정말 대박이지!?"

사회적 반응을 갈구하는 인간의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자신이 원하던 일이 생기면 기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반응이 필요하다. 함께 기뻐해주거나(최고의 반응) 칭찬을 해주거나(좋은 반응) 부러워하는(그리 나쁘지 않은 반응) 등의 사회적 반응을 접함으로써 기쁨과 성취의 감정은 지속되며 사건의 의미는 분명해진다.

큰 상을 받거나 혹은 게임에서 최고 점수를 갈아치웠다 하더라도 알아주는 이 없으면 짧은 성취감 뒤에 더 깊은 허전함에 빠지기 쉽다. 그렇다고 대놓고 자랑하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다. 특히 우리 문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성취를 알리는 판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세상에 나온 지 석 달도 안 되는 기간에 2,000만 다운로드라는 경이적인 성공을 거둬 모바일 게임업계에 이른바 '팡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애니팡>이 그러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카카오톡과 연계하면서 거둔 성공이다.

스마트폰 게임인 <애니팡>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 '사회적 사건'이 된다. 50만점을 돌파하면 이 사실이 카카오톡을 통해 지인들에게 자동적으로 공지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굳이 직접 듣지 않아도 나의 점수를 보고 기뻐해주거나, 칭찬하거나, 부러워할 타인들의 반응이 이용자의 머릿속에서 경험된다. 개인적 성취가 사회적 관계 망들을 타고 넘으며 사회적 의미를 탄생시킨다. 마치 4, 5개의 콤보가 연속으로 터지는 것처럼 기쁨은 반복적으로 경험된다.

우리는 사회적 반응을 얻기 위해 타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타인의 반응이 필요한 더 근본적인 이유는 타인과의 비교 없이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게임을 해서 100만점을 채운들 그 숫자의 의미를 알기는 힘들다. 잘하고 못하고의 의미는 대개 사회적 비교를 통해 이루어진다. 1960년대에 레온 페스팅거가 주창한 대표적 심리이론 중의 하나인 사회 비교 이론에 따르면 많은 사건들과 행위들의 의미는 그 자체로 불확실하며, 사람들은 사회적 비교를 통해 그것이 얼마나 바람직한 행위인지 판단하고 사건의 의미를 해석한다.

<애니팡>은 다른 사람들의 성적을 보여주며 내 점수에 의미를 부여한다. 점수가 주위의 친구들보다 높을 때 쾌감은 상승하기 마련이다. C. L. 다우닝 등 사회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평균보다는 좀 더 위"라는 인지적 편향(the above average effect)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 고등학생 10만명을 대상으로 한 사회조사에서 70%이상의 학생들이 자신의 지도력이 평균 이상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체육능력의 경우 6%의 학생만이 자신이 평균 이하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인지적 편향은 평균 이하라는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게 만들다. 자신의 <애니팡> 점수가 평균 이하일 때 스트레스를 받고, 승부욕에 사로잡혀 침대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타인에 대한 칭찬에 덜 인색했더라도, 친구의 기쁜 소식들을 알리는 데 덜 주저했더라도 <애니팡>으로 대표되는 팡 신드롬이 일었을까? 칭찬과 이해, 사회적 반응을 갈구하는 우리들의 쓸쓸한 모습을, 사회적 반응의 결핍이라는 시대의 아픔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성은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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