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동북아의 무핵(無核) 외톨이

김대중 고문 2012. 7. 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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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東北)아시아 지도를 놓고 한반도 주변을 살펴보자. 한국 을 둘러싼 네 나라, 즉 북한 과 중국 · 러시아 가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고 일본이 최근 핵무장의 빗장을 풀었다. 6자회담의 구성 국가로 보더라도 5개국이 핵 보유 또는 잠재 보유국이고 한국만 무핵(無核)국이다. 일본이 지난 6월 하순 원자력기본법을 개정해 핵 보유의 가능성을 현실화함으로써 동북아시아의 핵 지도는 확연히 달라졌고 분명해졌다. 이제 한국은 핵 억지력에서 완전히 코너에 몰린 외톨이가 된 것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왜 유독 우리 한국만이 흘러간 노래 부르듯 '평화'를 읊조리며 '비핵화'를 부르짖고 있는 것인가. 비핵화는 물 건너 간 지 오래다. 북한 정권은 나라가 망하면 망했지 핵은 절대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저들의 처지에서 보면 서방 세계의 '꼬임'에 빠져 핵을 포기한 리비아 의 독재자 카다피의 말로(末路)가 어떠했는지를 학습(?)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것을 기회로 이용했다. 중국의 군사력과 영향력이 날로 증가하고 러시아 의 매파 푸틴이 재등장하면서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마찰과 외교적 충돌이 잦을 것으로 본 일본은 '우리도 손 놓고 있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다질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일본의 핵 가능성으로 표출된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또한 그것을 기화로 핵무장의 길에 더욱더 박차를 가할 것이 뻔하다.

일본의 움직임에 미국도 묵시적으로 동조 내지 응원하는 낌새다. 일본의 법 개정이 알려졌을 때 우리와 중국 등은 큰 우려와 두려움을 나타냈지만 미국의 조야(朝野)는 별 반응 없이 넘어갔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유력지는 기사조차 별로 다루지 않았고, 세계의 평화와 핵 위험을 신조처럼 떠받들던 유명 칼럼니스트들도 조용했다. 그들의 눈에는 아무리 떠들어도 마이동풍(馬耳東風)인 북핵보다도 중국 패권주의의 급부상이 더 크게 보인 모양이다. 그러면서 한국에는 미사일 사거리나 좀 더 늘려주고 핵우산의 존재를 강조하는 것으로 달래는 중이다. 미국 하원 군사위에서 서태평양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자고 결의했지만 국무부와 국방부가 펄쩍 뛰고 백악관은 거부권을 행사할 태세다. 중국을 '자극'할까봐 그런다지만 어쩐지 자기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의 냄새가 난다.

장기적으로 미국은 서태평양 전략의 핵심을 중국 문제로 집약하면서 지역 국가의 이해와 이익보다 대(對)중국 견제와 G2 공존에 더 무게를 두는 쪽으로 갈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나 한국의 핵 안보 문제는 2차적이다. 지금으로서는 일본을 대리인으로 내세운 견제 전략을 가장 시의적(時宜的)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본다면 미국은 핵을 제거함으로써 '비핵화의 평화'를 도모하기보다 차라리 핵을 포화(飽和) 상태로 이끌면서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게 하는 전략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것이 왜 일본에는 적용되고 한국에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이냐는 점이다. 우리는 핵에 관한 한 미국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완전히 믿어서는 안 된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종북주의자들이 한국 땅에 핵의 존재 자체를 터부시(視)하는 미국 정책에만큼은 지극히 침묵적이고 그래서 종미(從美)적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은 이제 동북아에서 핵의 네거리에 알몸으로 내몰린 신세가 되고 있다. 그간 핵무장의 불가피성이 제기될 때마다 '국제법적 제약 때문에' '우라늄과 농축우라늄을 반환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과의 모든 원자력 협력이 중단되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과 군사 협력을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반대해온 한국 핵 무용론자들의 주장은 이제 북핵의 만고불변성과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 앞에서 타당성을 잃고 있다. 일본의 핵무장은 한국 핵 무용론자들이 제기했던 문제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일본은 별문제 없이, 별 거부감 없이 핵으로 가는 길을 열었는데 왜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가를 대답해야 한다.

솔직히 앞으로 6자회담이 열린다 해도 핵을 가진 (또는 가질 수 있는) 5개국 앞에서 우리가 도대체 무슨 말발이 서겠으며, 북한은 그런 우리와 무슨 대화나 협상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라. 우리가 지금 당장 핵을 갖겠다고 선언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 정부가 핵 보유에 관한 자해성 족쇄를 풀고 우리도 핵을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심각히 논의할 것임을 선언하자는 것이다. 최소한 핵이라는 카드를 보유하자는 것이다. 일정한 조건과 스스로 정한 제약 아래 칼을 허리에 차겠다는 것조차 남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못한대서야 어디 제대로 독립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동북아의 핵 지도는 새로 그려지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존재감은 그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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