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태 칼럼/12월 15일] 4대강과 초월주의

2009. 12. 1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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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예산을 놓고 대치한 여야는 타협할 뜻이 전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정세는 어느덧 절로 변하는 낌새다. 세상 이치가 묘하다. "4대강 죽이기"라고 외치던 이들이 "2012년 대선용"이라고 구호를 바꿨다. 설마하니 4대강을 아주 죽여 대선에서 승리하려는 음모라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4대강 사업이 무작정 강을 죽이는 짓은 아니라고 인정한 셈일까. 정부의'속도전'을 욕하다 엉겁결에 말려든 인상이다.

흥미로운 '대선용' 주장

정치세력이 대선 무한도전에 채널을 맞추는 것은 오히려 반길 만하다. 어차피 수리(水利) 환경 토목 경제 등의 과학적 논쟁에 누구도 진솔하지 않은 현실이다. 내놓고 정치로 승부하는 게 어느 쪽에 손들까 고민하는 국민을 위해 낫겠다 싶다.

영산강 쪽 여론 흐름이 수상한 마당에는 다음 대권이 걸렸다고 떠드는 게 상책일 수 있다. 야당 시장과 도지사가 강 건너 적진으로 넘어간 마당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영산강 살리기는 좋지만"이라며 엉거주춤한 지역 여론을 나라를 망칠 주술에 홀렸다고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치세력은 그렇다 치고, 대운하 때부터 TV 토론에 단골로 나와"저게 학자야"라는 혐오감을 준 이들이 많다. 정부를 돕겠다는 주제에 전문적 식견으로 반대론을 누르기보다 대통령의 소명의식을 찬양, 반감만 부추긴 이들이다.

그렇다고 반대 토론을 도맡은 이들도 나을게 없다. 나는 한강과 낙동강 물길을 잇는 구상에 솔깃했지만, 독일처럼 터널을 뚫고 배를 기계로 들어올려 운항하는 것이 우리 여건에 바람직한지 판단할 재주가 없었다. 독일 운하를 직접 봤고, 열심히 자료를 공부해도 그랬다. 그래서 운하는 재앙이라고 단언하는 이들에게 놀랐다.

토목공학자가 환경부터 논하고, 환경경제학자가 느린 수운(水運)은 시대에 뒤진다고 떠드는 것이 황당했다. 그러나 누군가 "대운하를 2시간만 공부하면 재앙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글 쓴 것에 논란을 포기했다. 지식보다 본능으로 다투는 싸움에 끼어들어 득 볼게 없다.

'4대강 살리기'논란은 다를까 싶었으나 대동소이하다. 그 놈이 그 놈이니 당연하겠지만, 맨 땅 파고 터널 뚫는 운하와 자연하천 정비를 똑 같은 재앙으로 몰다 보니 궤변이 더욱 지나치다. 다른 건 몰라도, 보를 쌓아 강물을 가두면 썩는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수질 악화를 막는 여러 첨단 기술이 있다고 반박한다. 비교 자체가 잘못된 느낌이다. 4대강을 그냥 두면 물이 충분히 흐르고 수질도 낫게 유지되는지 의문이다.

금강이 채만식의 <탁류> 때 어떤 형편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영산강이 그 시절에도 가뭄과 홍수로 농민의 한(恨)이었고, 지금은 거의 죽은 강이라는 건 안다. 낙동강 사정도 크게 나을 게 없다. 늘 허연 배를 드러내는 강 바닥을 파내 물이 흐르면 도리어 강과 자연이 죽는다니 모를 일이다. 흔적만 남은 청계천을 자연상태로 복원하라고 떠들고, 죽어가는 4대강에손대지 말라는 이들은 마치 '초월주의자'를 닮은 듯하다. 그런 이들이 유별나게 섬기는 <월든- 숲 속의 삶>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개발과 세금 등 국가작용을 거부했다. 그의'시민불복종'논리가 우리 사회에 유행한 것은 공교롭다.

4대강 현실 둘러봐야

<월든>과 소로우의 명망에 도전할 뜻은 없다. 다만 초월주의는 19세기 초 유행했다. 미국 산업자본주의가 정착하면서 사라졌다. 소로우가 월든 호반에 은둔한 것도 2년 남짓이다. 깊은 숲 속도 아니고 고향 마을 언저리였다. 어머니가 먹을 걸 모두 갖다 주었고, 소로우는 주말이면 시내로 놀러 갔다고 한다. 초월주의는 고작 문학운동, 문명비평이라는 평가도 있다.

4대강 사업 타당성과 예산은 국회가 잘 따져야 한다. 그러나 지식인들이 '삽질''토건'따위 왜곡된 규정을 앞세워 논란하는 것은 기껏해야 초월주의적 문명비평이 되기 십상이다. 지금이라도 4대강의 현실을 둘러보기 바란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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