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맞짱 토론

김철웅 논설위원 2009. 10. 6.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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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들은 최고의 '토론의 달인'으로 소크라테스를 꼽는다. 그의 토론방법은 독특했다.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답을 듣는 문답법을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무지를 깨닫고 진리를 터득케 했다. 이를 산파술(産婆術)이라고 불렀다. 스스로 새로운 지혜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은 없으나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낳는 것을 도와 그 지혜의 진위(眞僞)는 식별할 수 있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토론은 뭐니뭐니 해도 정치토론이 진짜다. 제대로만 하면 정치토론은 흥미진진한 것이다. 정치적 주제들이 그만큼 피부에 와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 시민들의 정치의식은 정치토론을 스스로 하거나 지켜보는 과정을 통해 고양된다. 정치토론은 최고권력을 놓고 벌이는 대선토론이 백미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세 차례 열린 지난 대선 TV토론에서 좋은 평가를 얻음으로써 대세론을 굳힐 수 있었다. 이처럼 미국 대선에서 TV토론은 지지율 변화와 당락에 상당한 변수가 된다.

미국 등에 비하면 한국은 정치토론은 물론 토론문화의 전반적 수준이 많이 뒤처져 있다고 본다. 이는 사회적으로 토론 훈련이 잘 돼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TV토론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내거는 주제에 비해 내용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참석자들은 자기, 또는 자기편 말만 녹음기처럼 재생할 뿐 상대편의 얘기를 귀담아 듣으려 하지 않는다. 너무 진영논리에만 사로잡힌 것이다. 여기에 TV토론들의 성격이 다분히 쇼 연출적인 것도 문제다. 이게 너무 심하다보니 러시아의 극우정치인 지리노프스키가 생방송 TV토론 중 상대방에게 주스를 끼얹거나 토론 후 주먹다짐을 한 사건들이 차라리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국정원장과 TV '맞짱토론'이라도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명박 정권이 국정원을 통해 시민단체들을 사찰한다고 박 상임이사가 의혹을 제기하자 국정원이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데 대한 대응이다. 박 이사로서는 그만큼 확신이 있고 또 절박하다는 뜻도 된다. 이에 대해 '아무나 현안이 생길 때마다 권력기관장에게 맞짱토론 하자고 하면 어쩌냐'는 반응도 나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이유는 없다. 박 이사가 범인(凡人)도 아니고, 그의 제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한 번 제대로 된 토론을 벌여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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