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복잡한 금융 시스템이 위기를 증폭시킨다
금융시장과 이를 감독하는 규제가 복잡해질수록 금융 위기는 더 자주 일어난다. 금융 시스템이 단순해야 복원력도 커진다. 금융 규제가 더 단순해져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앤드루 할데인 영국 중앙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12년 잭슨홀 회의(전 세계 중앙은행 학술회의)에서 '개와 프리스비(던지기용 원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개가 프리스비를 잡는 원리는 과학적 계산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경험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할데인은 이에 빗대 규제 당국은 은행의 포트폴리오 리스크를 복잡하게 측정하는 대신 이해하기 쉽고 문제 발생 가능성도 작게 규제를 설계하는 것이 낫다고 제안했다.
이는 금융회사들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계약 네트워크에도 적용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생태학자 로버트 메이 등이 참여한 또 다른 연구 논문에 따르면, 이런 네트워크가 복잡해질수록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낮아진다. 위험을 인지하고 관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물리학자들과 함께 '네트워크 복잡성(network complexity)'의 영향을 연구했다. 이들은 대출과 기타 금융상품을 통해 얽힌 금융회사 간의 네트워크를 밝히고 이런 복잡한 구조가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일어났을 경우 나타날 결과를 판단하는 능력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조사했다.
한 은행이 다른 은행들과 분담한 책임을 갑자기 저버리는 상황이 일어난다고 가정해보자. 이 은행들과 거래를 맺은 곳이 어디인지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으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문제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회복률'과 관련한 불확실성도 있다. 회복률은 계약의 한쪽 당사자가 디폴트에 빠질 때 상대편이 얼마만큼 회복할 수 있는가를 말한다.
연구진은 '네트워크 복잡성'이 커지면 예측이 더 어려워진다고 주장한다. 이 연구에 참여한 물리학자 스테파노 바티스턴은 서로 연결된 은행이 많을수록 손실 규모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더 커진다고 설명한다. 앞으로 닥칠 여파를 예상하려고 해봤자 더 큰 실수만 하게 된다.
따라서 규제는 금융 시스템을 더 단순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네트워크 안에서 한 은행이 다른 금융회사와 연결된 정도와 범위에 따라 비용을 부과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일부 경제 이론가는 파생상품 등 금융상품이 많아지면 금융시장이 더 완전해지고 효율적이 되며, 위험은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이는 순진한 생각이다. 이런 주장은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네트워크 안의 연결 관계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고 항상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고 가정한 수학 모형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바티스턴을 포함한 연구진은 규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전체 시스템이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규제가 늘어나면 금융회사들이 지키고 보고해야 할 절차가 많아져 부담이 커진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위험이 감소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할데인의 말처럼 우리는 아직 '개와 프리스비'로부터 배울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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