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견제 위한 노림수.. "저유가 최대 2년 지속될 것"

송민섭 2014. 11. 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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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OPEC '원유 생산량 유지' 왜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에 저유가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감산은 없다"고 선언한 다음 날인 지난 28일(현지시간) 국제유가는 곤두박질쳤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이날 배럴당 66.15달러, 브렌트유는 70.1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6월에 비해 40% 가까이 떨어진 것이고 5년2개월 만의 최저치다. 전문가들은 저유가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30여년 만에 저유가 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앞서 1981년부터 1998년까지 공급과잉(2차 오일전쟁)으로 한때 배럴당 1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기록적인 저유가 시대가 이어졌다.

당장 국가 간 희비가 갈린다. 원유 수출에 국운이 달린 러시아, 베네수엘라는 경제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와는 달리 한국과 일본 등 에너지 수입국들은 내년도 경제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엑손모빌 등 에너지 관련 주는 폭락했고, 제너럴모터스와 아메리칸항공 등 운송·유통주는 일제히 상승했다.

◆사우디 생산량 유지로 미·러 동시 견제

이 같은 '충격파'의 발단은 오펙의 '변심'이었다. 국제유가는 지난 6월 배럴당 107달러(WTI)를 찍은 뒤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원유 수요는 점점 줄어든 반면 미국의 셰일오일(퇴적암층에서 채취하는 원유)과 캐나다 오일샌드(흙 속에서 추출하는 원유) 업체들, 러시아의 공급량은 계속 늘었다.

유가 하락이 이어지자 세계는 오펙이 늘 그래왔듯이 27일 각료회의서 감산을 결정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부분 회원국의 경우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이상은 돼야 정부예산을 맞출 수 있고 100달러는 넘어야 재정적자를 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오펙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생산량 유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감산할 경우 미국의 셰일오일 업계와 러시아·노르웨이 등 다른 산유국의 배만 불리게 될 것이라는 설득이 먹힌 것이다.

당분간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오펙 주도의 유가시장을 흔드는 신흥세력을 이참에 털어버리자는 게 사우디의 노림수다. 압달라 엘바드리 오펙 사무총장이 회의 직후 "유가가 떨어진다고 해서 우리가 겁에 질려 서둘러 뭔가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유가 하락이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반영하진 않기 때문에 좀더 지켜보기로 했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현재 상황은 사우디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 셰일오일 업계 대표주자인 굿리치의 28일 주가는 전거래일보다 34% 떨어진 주당 6.05달러에 거래됐다. 내년 캐나다 원유 채굴량도 관련 기업들도 줄도산 등으로 15%가량 줄어들 것으로 토론토 노바스코티아뱅크 측은 내다봤다. 레오니트 페둔 러시아 루크오일 부회장은 "오펙은 부채 규모가 큰 소규모 정유업체들을 시장에서 퇴출하려고 하고 있다"며 "'강한 기업'만이 유가 급락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유가, 향후 2년간 60∼80달러선"

오펙의 이번 결정이 러시아와 이란, 베네수엘라 같은 반미 국가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은 세계 1, 2위를 다투는 원유 수입국이기도 하다. 저유가 국면에서 손해도 보지만 이익을 볼 여지도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러시아와 이란 상황은 다르다. 원유 수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러시아의 경우 원유·천연가스 수출로 국가재정의 50% 정도를 충당한다. 서방의 오랜 제재로 국가재정이 파탄 지경인 이란은 유가가 배럴당 131달러는 돼야 균형재정을 이룰 수 있다. 이번 감산 결정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러시아가 눈엣가시인 미국과 시아파 맹주인 이란을 견제하려는 사우디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러시아는 유가 하락으로 극심한 내상을 입었다. 러시아 주요 증시인 RTS지수는 28일 심리적 지지선인 1000선이 붕괴해 5년여 만의 최저치인 974.27까지 떨어졌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29일 연초보다 56%나 뛴 달러당 49.46루블에 거래되고 있다. 러시아는 유가를 105달러, 환율을 달러당 35루블로 추산한 2015년도 예산안 수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유가는 최소 수개월에서 최대 2, 3년까지는 배럴당 60∼80달러선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기관 IHS의 제이미 웹스터 국제유가 담당 팀장은 블룸버그통신에 "오펙의 결정은 하루 200만배럴의 원유가 계속 초과 공급된다는 얘기"라며 "시계제로 상황이 앞으로 2년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배럴당 60달러까지 유가를 끌어내렸다가 80달러대에서 안정화하는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이먼 워델 '글로벌 인사이트' 애널리스트는 "사우디와 걸프국들은 (충분한 금융자산과 낮은 원유 생산단가로) 한동안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며 "재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저유가 정책을 펼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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