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말고기 파문..동유럽 馬車금지가 발단

유진우 기자 2013. 2. 2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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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시작된 말고기 파문이 점입가경이다.

영국의 대형 할인매장에서 판매된 쇠고기 햄버거에 말고기가 섞여 들어간 것이 확인되면서 시작된 말고기 파동의 불똥은 한달 만에 프랑스·독일·스페인·이탈리아 등 유럽 내 21개국을 거쳐 아시아 홍콩까지 튀었다. 27일에는 미국에서도 소동이 벌어졌다. 멕시코에서 도축된 냉동 말고기가 유럽으로 배송되는 과정에서 남부 휴스턴을 거쳐갔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논란이다. 어쩌다 이 문제가 생겨났고, 이렇게까지 커졌을까. 그 배경에 대한 관심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 아시아 국가에도 불똥 튀어…소비자 불안감 갈수록 더해가

세계적인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IKEA)는 27일(현지시각) 홍콩 홈페이지에 "체코 이케아 매장에서 파는 미트볼에서 말고기 성분이 나온 점을 감안해서 홍콩 내 3개 지점에서 미트볼을 잠시 중단하겠다"고 공지했다. 이케아는 "홍콩에서 판매되는 미트볼은 체코에 공급되는 업체와 다른 곳에서 만들어졌지만, 홍콩 고객들의 우려를 덜어주는 차원에서 이번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케아는 가구 매장 외에도 값싸고 질 좋은 카페테리아로 유명하다. 미트볼은 인기 메뉴 중 하나. 유럽을 달군 말고기 파동의 여파가 홍콩 소비자들에게도 미친 셈이다. 이케아는 이날 프랑스, 영국, 스페인, 아일랜드, 포르투갈에서 판매되던 소시지도 공급을 멈췄다.

이케아뿐만이 아니다. 테스코 등 영국의 대형슈퍼들은 판매대에서 쇠고기 가공식품을 아예 철수했다. 앞선 조사에서 걸리지 않은 제품들에도 말고기 성분이 섞여 있을지 모른다고 판단해서다. 말고기 불안감에 쇠고기 가공식품이 팔리지 않는 것도 작용했다. 26일 영국의 시장조사 업체 칸타르 월드패널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말고기 파동이 시작된 지난달 17일 이후 한 달 간 영국 내 냉동 햄버거 판매는 43%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 말고기 즐기지 않던 유럽국가들, 관련 검역 규정도 미흡

유럽이 말고기 파동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우선 음식 문화 탓이다. 전통적으로 말은 소나 돼지처럼 먹는 가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말은 귀족적인 동물이었다. 승마에서 보듯이 '인간의 친구'라는 인식이 강하다. 다른 문화권에서 말을 소와 같은 노동력으로 볼 때, 영국인들은 말을 경마와 사냥 등 레저용 가축으로 썼다. 개처럼 '기르는 짐승'이지 '먹기 위해 키우는 가축'이 아니었다는 것.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는 영국에서 기사도가 발전하면서 말에 대한 유별난 애착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프랑스 시사 주간지 르 포엥(Le Point)은 "영국인에게 말고기를 대접하는 것은 인도인에게 쇠고기를 주거나, 무슬림ㆍ유대인에게 돼지고기를 주는 것과 같다"고 썼다.

역사적으로는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도 말고기를 먹긴 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즐겨 먹던 식품은 아니었다. 음식료품에 대한 관리ㆍ검역이 철저한 유럽연합(EU)이 소나 돼지와는 달리 말고기에 대한 도축,ㆍ유통 관련 규제를 엄격하게 마련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게 화근이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23일 유럽의 제도가 허술했기 때문에 말고기 시장이 음성적으로 자라났다고 보도했다. 말 사육·도축 업체들은 서유럽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EU에 늦게 가입한 루마니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성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 도로교통 현대화가 촉발…유럽 경제위기가 불 붙여

이 지역에서 불법 말고기 거래가 횡행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동유럽 교통망 현대화 프로젝트였다. EU는 2007년 개발이 덜 된 동유럽 지역에 새 도로를 놓으면서 교통법규도 함께 고쳤다.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새로 깔리는 도로에선 말이 끄는 마차나 당나귀가 모는 수레를 지나다니지 못하게 했다.

규제가 시작되면서 마차를 끌지 못하게 된 말과 당나귀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말 유통업자들은 이 남아도는 말들을 사다가 고기로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말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생계가 어려워진 말 농장들도 여기에 합세했다.

그 무렵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 국가)에 닥친 경제위기가 불을 키웠다. 지난 2010년 이후 국제 선물 시장에서 쇠고기 가격은 급등했다.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수요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오른 쇠고기 가격은 경제난을 겪던 유럽의 식품 가공업체들에 큰 부담이었다. 반면 음성적으로 판매되던 말고기 값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식품가공업체들은 제품 단가를 낮추기 위해 쇠고기 제품에 말고기를 뒤섞어 팔기 시작했다.

때마침 EU 회원국들의 검역 기준도 완화됐다. 유럽에서 식품 검역은 보통 유통업체와 이를 감독하는 지역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지방 정부가 재정난에 시달리면서 "프랑스 가공업체에 대한 검역은 생략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두는 등 규정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전했다.

◆ 뒤늦게 손 쓰는 EU, 해결할 과제 산더미

EU는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지난 25일 EU는 27개 전 회원국이 참석하는 농업장관회의를 열고, 햄버거 등 육류가 들어간 가공제품의 원산지 표기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전 유럽에 걸쳐 말고기 유통 실태를 수사 중인 유로폴(유럽공동경찰기구)은 오는 3월 중순쯤 1차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15일에는 식품유통 상설위원회가 긴급 소집돼, 모든 회원국에 말고기 혼용 여부를 판별하기 위한 DNA 검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 이번 말고기 파동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말고기 파동으로 도축·가공·유통·검역 등 EU 내 유통 시스템에 총체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제도적으로 보완하려면 회원국 정부들이 협력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회원국들간의 책임을 정리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잘잘못을 가리는 과정에서도 회원국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주요 말고기 공급국으로 지목된 다니엘 콘스탄틴 루마니아 농무장관은 "루마니아 기업은 EU에 공급하는 고기에 원산지를 정확하게 표시한다"고 반발했다.

유럽 전역을 휩쓴 경제위기로 회원국들 금고가 텅 빈 가운데, 관련 재정을 확보하는 것도 관건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검역 관련 인원을 늘리기는 커녕 줄일 계획이다. 영국은 내년까지 식품안전청 산하 식육위생국 예산을 1200만파운드(약 200억원) 삭감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물량도 지금보다 30% 줄어든다.

이런 중에도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닐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영국 성인 중 96%가 이번 말고기 파동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 중 74%는 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평했다.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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