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입고 자는 것 외엔 사회생활과 단절"

글·사진 황경상 기자 입력 2010. 7. 19. 10:12 수정 2010. 7. 1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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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 체험기

지난 1일 참여연대의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 체험에 참가한 김진희씨(29·여)는 나날이 고민이 늘고 있다. 1주일 전이다. 깜박 잊고 회사에 우산을 두고 왔는데 출근길에 비가 내렸다. 우산을 살까 말까 생각했다. 평소 같으면 살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는 캠페인에 참가한 할머니(삼선동 주민)·대학생 2명과 함께 4인가구 최저생계비 136만3090원으로 한 달을 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고민 끝에 비를 맞기로 하고 머리를 감싼 채 뛰어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감기에 걸려 약값이 더 드는 건 아닐까?'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 체험을 하고 있는 직장인 김진희씨(오른쪽)와 대학생 김만철씨가 18일 방 안에 마주 앉아 가계부를 작성하고 있다.18일 체험 지역인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에서 만난 김씨는 대학생 김만철씨(24)와 함께 밥·계란말이·김치·단무지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의 최저생계비 체험 참가는 대학생이던 2004년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친구를 만나 차 한잔 마시는 것도 부담돼 모든 약속을 8월로 미뤘다"며 "익숙했던 소비들을 멀리하면서 단절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최저생계비로 사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김씨는 통근하느라 4만5000원을 충전해 써야 했던 교통카드가 바닥나 또 한번 충전해야 한다. 밖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할 때는 1300원짜리 김밥이나 700원짜리 컵떡볶이로 버텼지만 벌써 외식비로 3만원 가까이 지출했다. 직장에서 교육받으면서 제공받은 세 끼 밥(9300원), 동료가 건넨 4500원짜리 팥빙수는 비용에 넣었다. "최저생계비로 산다고 늘 얻어먹기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김씨는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기 시작했고 아이스크림 유혹을 이기려고 무더위에도 요구르트를 얼려 먹었다. 이 정도 자린고비 생활에도 체험 15일이 지난 지금 정부의 최저생계비 책정액의 72.4%(98만7190원)를 썼다. 식료품비를 책정액의 절반도 쓰지 않고 교육비·교양오락비 등은 한 푼도 쓰지 않으며 전기·수도·가스 공과금을 내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주거비(30만원)도 정부가 정한 23만5085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두고 캠페인에 합류한 안성호씨(28)도 지난달 직장 다닐 때 쓰던 용돈의 절반도 안되는 돈으로 한 달을 나야 했다. 고민 자체가 '먹고 입고 자는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최저생계비에 담겨 있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친구를 만나 3800원짜리 밥을 먹은 것이 외부활동의 전부다. 누나 집에 갔다오는 것(6600원) 외에 최소한으로 움직였지만 벌써 교통카드만 2만7500원을 충전했다. 그는 "생각지 못한 지출을 하면 식료품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허리가 너무 아파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는 덜컥 겁이 났다. "예전엔 생각없이 병원에 갔는데 얼마가 나올지 걱정이 됐어요. 돈 없는 사람들이 약국만 가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캠페인은 2007년 이후 3년 만에 실시되는 정부의 최저생계비 측정 과정에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마련됐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손대규 간사는 "1999년 중위 소득의 45% 수준이었던 최저생계비가 2008년에 34%로 떨어졌다"며 "비현실적인 면을 개선하기 위해 중위 소득의 40% 수준 이상으로 최저생계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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